생활과 나눔

태초는?

가랑비01 2007. 1. 11. 00:25

<태초는?>

 

 선사시대는 문자로 기록이 되지 아니한 시대를 일컫습니다. 역사시대는 문자를 통하여 기록이 되어지는 시대입니다.역사라는 것은 기록물이 있어야 합니다.현대에는 과학의 발달로 기록이 되지 않은 시대까지도 여러 흔적을 통하여 역사의 추정이 가능하여졌습니다.

 

 기호나 문자로 된 기록이 남긴 사람들 입장에서 나름대로 진실하게 쓰여졌을 경우에도 유물과 여러 과학적인 분석을 통하여 진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던 태초 때부터 기록이 남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진실은 기록으로 남기여지지 않았을지라도 사람들의 삶과 세상 속에 잠재적인 흐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태초를 본 사람이 없다고 해도 그 진실은 만물에 남아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어 내셨다.]  태초가 언제일까요. 태초는 말 그대로 한 처음입니다. 어떤 커다랗고 아득한 일정 시점에 있어서 시간의 시작입니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그 바로 전 순간에 땅이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던 태초는 아무 것도 없는 세상이 아니라 땅이 있고 흑암이 있고 물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이전의 어떤 세상이 있다는 말입니다. 무질서와 혼돈의 세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땅과 흑암과 물이 있어 우리가 알 지 못하는 어떤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물 위에서 운행하시다]는 말은 하나님이 내 마음에 없는 캄캄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암탉이 알을 품듯이 우리를 품으려고 애쓰면서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시고 계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그 혼돈 위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가물가물한 어두움이 휩싸고 있지만 만물을 나게 하는 생명의 물이 있고  그 물 위에 하나님의 신이 혼돈과 흑암의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하게 질서를 이끌고 계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혼돈과 무질서의 세상이나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생명의 빛으로 감싸고 세상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표현입니다. 

 

  '빛이 있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천지창조가 시작되는 그 순간은 흑암과 혼돈의 세상에게는 말세가 되는 것입니다. 무질서가 극에 이르러서 하나님의 질서를 나타내는 빛의 세상이 열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하는 그 순간은 빛의 세상으로 거듭나 새로이 출발하는 세상이나 사람에게는 태초가 됩니다. 여기서 태초는 처음이며 끝이며 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가 임하기를 고대하며 부활하여 하나님이 통치하는 새로운 질서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미래에 나타날 새로운 세상이 이루어지는 시점이 새세상에 태초라면 이 시대의 마지막인 지금은 말세입니다. 현재의 우리에게는 말세이지만 미래 세상에게는 태초가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는 말세와 새로운 세상이 창조되는 순간인 태초가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달리 불리어 질 수 있습니다. 태초는 과거와 미래 사이인 현재라고도 할 수 잇습니다. 태초는 시공간으로 이루어진 무한한 우주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성서의 기록은 하루를 '밤이 되었다가 낮이 되었다'는 표현을 씁니다. 성서에서 하루는 아침에서 시작하여 낮을 지나 저녁이 되어 아침까지를 하루라고 표현합니다. 성서 전체를 하루로 친다면 성서의 천지창조의 순간은 아침입니다. 밤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흑암의 시간입니다. 성서는 빛을 낮이라고 합니다. 가물가물 새벽을 여는 아침을 우리말로는 처음을 뜻하는 '앗. 갓'이 되어 한자로 조(朝)라고 표현합니다.

 

 태초는 밤과 낮의 사이인 아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태초는 이전 것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그 순간을 뜻입니다. 태초는 커다란 새로운 시간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시공간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우주에서 태초는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태초는 우리 옛기록을 참조하면 처음이지만 시작이 아니고 마지막이지만 끝이 아니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태초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하나님 차원의 시간입니다. 태초는 가물가물 하고 아득한 과거이면서 바로 지금 현재이면서 다가올 미래를 의미합니다.

 

 태초는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늘나라가 임하는 때와도 통합니다. 예수님은 '깨어 있으라, 하늘 나라가 도둑처럼 갑자기 가까이  임한다'고 말씀하시면서도 '하늘 나라는 여러분이 믿는 그 순간에 여러분 한가운데 이미 와 있다'고 선포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태초나 하늘나라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영원을 넘나드는 하나님이 주재하며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각입니다. 태초는 무수히 오랜 영원한 시간에 일어난 시간일 수도 있고 아주 옛날 시점일 수도 있고 미래에 나타날 시간일 수도 있고 한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태초는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마음이 가난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는 자'에게 바로지금 임하는 현재의 이 순간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여기있다 저기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나라는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하나님을 맞이 할 수 있다는 신앙 고백을 하는 그 순간에 바로 임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을 맞이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뵈올 낯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오신 그 순간을 즐겁게 맞이하겠다는 마음이 서는 그 순간에 하나님 나라가 내 앞에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는 단순하고 간단한 마음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 임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계실 때 그 옆에 있던 강도가 하나님을 받아 들이는 그 순간에 임하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고 천지 창조의 순간들이라는 것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다]는 '우리가 보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다'라는 뜻도 있으면서 우리가 종교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세상'을 뜻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다'는 인간의 시간 개념이 아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공간이 하나로 어우러진 하나님의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믿는 모든 사람들, 한사람한사람에게 바로 지금 '천지창조'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다]는 하나님의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 활동의 설명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다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시간에서부터 성서에 하나님 말씀이 임하는 모든 하나님 사람 들에게 이루어진 역사이고 앞으로도 이루어질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자연과학적인 세상과 정신적인 세상에 역사하시는 천지창조입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었다. 창세기의 [한처음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구약과 신약 성경 전체의 서론이며 본론이며 결론이며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 사람들의 소망이며 하나님의 존재 자체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다'는 믿는자들에게 믿음으로 들어가는 처음이며 현재이며 미래입니다. 신을 찾아 평생을 책속에 파묻혔던 어떤 사람은 이 간단한 말씀에 이르러 어두운 밤하늘을 순간적으로 환하게 가로지르는 찬란한 혜성처럼, 대지를 순식간에 가르는 천둥번개처럼 다가와 세상이 순간적으로 정지하며 마음을 뒤흔들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 새로이 태어난 모든 선지자들이 바로 천지를 창조하는 역사가 일어났고 믿는 모든 자들에게도 천지창조의 역사는 지금도 일어납니다.이 말씀은 성경 전체를 한마디로 표현한 말씀입니다.이 말씀에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내가 생각해 나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가 확신되어졌을 때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오늘 지금 우리에게 '빛이 있으라'는 하나님의 창조역사가 함께 하시기를 바래 보며 믿는자들의 미래에도 항상 빛의 역사가 함께 하리라 믿습니다.

 

 창세기의 진실이 무엇인지 의견이 많습니다. 창세기를 기록할 당시의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연과학적으로 보이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그대로 믿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빛으로 오시고 헬라에 복음이 전파되면서 유다와 헬라 세계의 공통점이 말씀이었습니다. 복음 시대에 빛은 자연과학적이면서 종교적인 빛으로 이해 되었습니다.

 

 말씀은 태초의 하나님이며 현재의 하나님이며 미래를 이끌어갈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는 하나님 자신의 권위이며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모든 역사를 이룩하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선지자들에게 말씀이 임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이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는가는 모든 믿는 자들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상고대에는 성경의 말씀에 비유할 수 있는 '울림'이 있었고 빛에 비유할 수 있는 '밝음'이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울림은 신이었고 하늘과 땅의 소리를 잘 듣고 세상에 대해 밝은 지혜를 갖고 아는 사람이 '알지'이고 성인(聖人)이었습니다. 어떤 글자의 과학적인 진실이 어디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구절을 어떻게 그 당시 사람들이 믿었으며 현재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태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주관적인 시점에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태초는 처음이며 끝이며 현재입니다. 오늘 바로 지금 이자리에서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보며 자신을 반성하는 깨어있는 모든 이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도둑처럼 임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이 곳에서도 작은 천지창조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태초의 천지창조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이 생겨라'는 한마디 말씀으로 창조 하시지 않고 여섯날을 일하시고 일곱날이 걸립니다.네째날 같은 경우에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먼저 큰 윤곽을 기획하시고 하나하나 순서대로 창조하십니다.

 

  창세기는 일순간에 이루어진 계획이며 선포이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일순간에 하나님을 믿어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 사람이 되며 상황에 따라 그 믿음의 말씀들을 하나하나 내몸에 배이도록 행동으로 옮기는 삶이 창세기의 천지창조의 역사를 통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자연과학적인 하늘과 땅의 창조는 하나님의 시각에서 이루어진 우주의 시각이요, 종교적인 천지창조는 새하늘과 새땅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상을 의미하면서도 모든 사람 각자에게 하늘나라가 임하여 거듭나는 그 순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