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하는 이유
<살아야 하는 이유>
에제키엘
존경을 받는 사람들은 삶에 대한 예찬을 빼놓지 않는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도 살아볼만하다거나 삶이 신비롭다거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소중함으로 살아간다거나... 하며 삶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빚더미와 배신으로 상실을 경험하거나 세상을 고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과연 삶은 의미 있는 것일까? 서로 다른 입장에 처한 삶을 생각할 때 삶은 과연 이 세상에 살아가는 것 속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나 한 것일까?
부모가 한 아이를 양육해야 할 때 사회적으로 인간 윤리로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법적으로도 아기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부모가 책임을 지는 것이다. 생명 윤리는 타인에 대한 살인을 금하며 자기에 대한 위해는 자기 몫으로 둔다. 그러나 종교는 자기에 대한 위해를 죄로 규정하는데 이 점에서 종교는 인간 윤리와는 다르다.
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삶은 내가 규정하는 것이 모든 것이 될 수 없으며, 사회가 규정하는 것이 모든 것이 될 수 없다. 오히려 탄생 이전부터 죽음 이후까지 즉 전 우주적 의미로써 삶이 규정된다는 것이 종교이다.
세상은 무엇인가? 하느님께서 거룩하게 창조하신 것이다. 사람도 거룩하고 위대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하느님의 섭리가 살아 움직이며 실현되는 곳이다. 하느님을 닮은 인간, 하느님을 닮은 세계! 모든 것이 거룩해질 수 있도록 동산지기로 부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다.
만약 우리가 현재의 삶만을 보고 살아갈 때 선천적으로 장애를 안고 자라는 아이들과 힘없는 사람들이 생존하기에는 너무도 힘든 지옥이 바로 이 세상이 될 것이며 슬픔과 비통 속에 생을 마감해야 할 것에 괴로워할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우주적이고 신비한 존재로 이끌어 주신다. 올바름을 가르치시며 사랑의 가치를 알게 해 주신다. 헌신의 필요성과 약한 자를 보살펴야 할 이유들과 존재의 이유를 부여해 주신다.
삶은 하나의 과정이며 죽음은 하나의 정거장일 뿐 종착역이 아니다. 삶의 과정이 아름답고 올바를 때 하느님은 매 순간 삶의 기쁨을 주시고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시련을 극복하여 영원한 생명이 준 삶의 가치를 지키라고 우리의 몸과 마음, 자연과 역사를 통해 격려 하신다.
나눔, 그 아름다운 삶 / 에제키엘
<왜?>
정 채 봉
아우가 불평하었다.
"하느님은 왜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비를 주시는지 모르겠어요."
형이 대답했다.
"그럼 너는
미운 자식이라고
따로 밥상을 차려주는 부모를 보았느냐?"
아우가 말했다.
"하느님은
선한 사람에게
역경을 주시기도 하는 걸요."
형이 대꾸했다.
"햇빛만 내리면
사막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