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십시오
<서로 사랑하십시오>
가브리엘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물었습니다: "주님, 형제가 제게 죄를 지을 때에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가지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마태18:21)
오늘 복음은 형제의 잘못을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바로 비유 하나가 나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바로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종이 자기 동료의 백 데나리온 빚을 탕감하지 않았다는 것과 그로 인해 일만 달란트를 탕감해 준 왕이 분노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이 비유는 왜 우리가 형제의 잘못을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고 용서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해 준 왕은 우리에게 크신 용서와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자애로운 하느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즉 이미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엄청난 용서와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누구를 용서해 주고 아니고는 그 사람에 대한 나 자신의 호감 또는 신뢰 등 상대에 대한 나의 감정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내마음에 드는 사람이면 조금 너그럽게 이해되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좀 냉정하게 판단하고 재단하기도 합니다.
물론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판단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보통의 사람들에겐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합니다. 또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 판단의 기준이 나의 가치관과 기준이 된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즉 용서의 근거와 기준이 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잘 못을 용서해 주는 데 있어서 전혀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인지라 조금 너그럽게 잘못을 용서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나의 가치관에 있어 크게 벗어나는 것이 아니기에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그럽고 포용력이 있기 때문은 더더욱 아닙니다.
성서가 말하고 있는 용서의 근거는 이미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엄청난 용서와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 앞에서 완전히 떳떳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오늘 봉독 말씀처럼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심판대에 설 사람인데, 어떻게 우리가 형제를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로마14.10)
태양이 우리에게 베푼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겠습니까? 은혜를 갚지 못하니 빚이며, 한 평생 자연에게, 하느님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이웃이 자기한테 진 적은 빚을 탕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이 이웃의 빚을 탕감해 주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그의 빚을 탕감하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먼저 하느님이 인간의 빚을 탕감해 주셨으므로 인간이 인간의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고 우리가 심판하고 멸시한다면 왕이 일만 달란트의 탕감을 거두고 종을 형리에게 넘기듯이 우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심판하고 멸시한다면 왕이 일만 달란트의 탕감을 거두고 종을 형리에게 넘기듯이 우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우리 아버지께서도 이와같이 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은혜, 보호하심 가운데 있다고 느끼십니까? 그렇다면 내 이웃에게도 무한한 사랑과 은혜, 보호함의 손길을 내미십시오. 이는 우리의 선택과 의지에 따라 선행을 쌓는 일이 아닙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께 이미 은혜를 받은 이들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서로 사랑 하십시오.
나눔, 그 아름다운 삶 / 가브리엘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마디로 요약됩니다.](갈라디아5:14)
[여러분은 진리에 복종함을써 마음이 깨끗해져서 꾸밈없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충심으로 열심히 서로 사랑하십시오](베드로전1:22)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요한일3:14)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요한일3:18)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이미 완성되어 잇는 것입니다.](요한일4:12)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요한일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