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 김 수 환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김 수 환
"무엇 때문에 사느냐?"고 물으면, 정신 나갔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왜 살기는 왜 살어? 사니까 사는 거지!"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서울역을 가르쳐 주는 사람들이, 인생의 의미를 물으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어떤 질문이 더 중요합니까? 우리가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무엇을 위하여 사느냐'는 의미를 생각하지 않다고도 할 수 있고,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삶의 흐름에 우리 자신을 내맡긴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 사회는 '생각'할 줄 모르고, 철학이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도, 그 생존의 의미도 모호합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하는 물음은 분명히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인 이상,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보람도 의미도 있고, 또 기쁨도 있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놓고 매일 5분씩이라도 생각하면서 산다면, 우리는 분명히 하루하루를 뜻깊게 살아갈 것이고, 우리 사회도 보다 더 인간적이고, 우리 이웃에게도 도움을 줄 것이고, 우리 사회도 보다 더 인간적안 사회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살아있는 것뿐만 아니라 무생물에게도 그 존재의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갈대 하나하나에도 그 존재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물며 인간에게 있어, 그 삶, 그 존재의 의미가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존재 가운데 가장 탁월한 인간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긍극적으로 빛나는 존재, 당신의 생명과 영광을 누리는 존재로 만들어 나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 계획을 긴 세월을 통해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만든 그 의미를 각자가 소중히 생각하고,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나의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적극적인 방향으로 생각할 때, 자기 성장이라는 게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 의미는 찾아 나서지 않으면 찾아지지 않습니다. 어느 길을 따라서 살고 있든, 우리는 자신의 정확한 존재의미를 찾지도 못하고 만족하지도 못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지도 못합니다. 그 어느 것도 인간으로 하여금 참으로 인간답게 살게 하지 못하며, 인간이 던지는 근본 문제, 인생의 의미를 묻는 물음에 답을 줄 수 없습니다. 이 물음에 답을 줄 수 있는 이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뿐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눈이 아닌 영혼의 눈을 떠야 합니다. 병자나 어려움에 처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통해서 마음이 정화될 때 '영혼의 눈'을 떠서 주님을 보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참된 발전이란 고난을 통해서 옵니다. 고난 때문에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이 우리를 성장시켜 준다고 할까,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그 고난에 더 용감하게 대면할 줄 알고 절대로 좌절해서는 않됩니다. 나는 가장 큰 빛은 가장 큰 어둠 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밝은 빛의 날은 시련과 고통의 날을 겪으면서도, 그럴수록 더욱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훨씬 앞당겨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참으로 주님 앞에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이 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수난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닫고 그분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또 빛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그리스도를 참으로 삼아 복음을 따라 사는데 더욱 열의를 가져야 합니다. 나 자신부터 그분의 길을 가고, 그분의 진리를 따르고, 그분의 정의와 사랑을, 그분의 생명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을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가난과 겸손, 사랑과 봉사를 본받는 것이요, 그 극치는 형제를 위하여 당신 스스로를 바친 그분의 고난에 명실공히 참여하는데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라고 하면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남을 위하여 죽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와 함께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로서 우리에게 더 필요하고 본질적인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 각자와 교회 전체에 생생한 것으로 나타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분의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내 몸같이 사랑할 때 우리는 진실히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떠나서 참사람이 될 수 없고, 사랑을 떠나서는 참된 인간 사회도, 세상도 건설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사회의 화해와 이 땅의 평화를 원한다면 먼저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안에서 잠긴 문을 스스로 열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문안에 갖힌 사람을 구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무상(無常)을 넘는 영원에로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영원에로의 문을 여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먼저 근본적으로 남을 받아줄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남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심화되면 남을 용서해줄 줄 아는 마음이 됩니다. 남을 용서해 주는 마음은 너그러워지고 사랑이 넘치는 마음이 됩니다.
우리가 참으로 서로 사랑하고 나눌 줄 안다면, 서로 형제로 받아들이고 서로의 잘못을 용서할 줄 안다면 우리는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 결국 서로 사랑하는 것이 평화의 길입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각 사람이 제 위치에서 이기심 극복의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평화는 '너'와 '나',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평화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그것을 위해 인간에 대한 사랑의 교육을 해야 합니다.
참사랑은 무력합니다.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거절할 수 없을 만큼 무력합니다. 어떠한 고통도 죽음까지도 받아들입니다. 때문에 사랑은 가장 무력하면서 가장 강인합니다. 사랑은 온 세상을 분쟁과 갈등과 파멸로부터 구할 수 있는 구원의 첩경입니다.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해야 참으로 살 수 있고, 또한 그 사랑이 영원으로 승화될 때 비로소 삶의 참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영원에 대한 신앙이 없으면 이 시간 속에서는 인생과 사물의 궁극적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삶'을 준 자, '나'를 존재시킨 자를 발견할 때, 인간은 비로소 존재 의미를 지닙니다.
인간에게 있는 '신적인 무엇'을 인식하고 내가 얼마나 존엄한 존재인가를 인식할 때, 우리는 이웃과 타인을 비로소 다시 보게 됩니다. 그것이 빛입니다. 사랑이 싹틀 때, 그것이 빛입니다. 빛을 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불태워야 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사랑이야말로 죽기까지 가는 것이고 생명까지 바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 자기를 완전히 비우는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서로 사랑하고 나눌 줄 안다면 서로 형제로 받아들이고 서로의 잘못을 용서할 줄 안다면 우리는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확실히 육체를 넘는 정신이 있습니다. 또한 이 정신의 바탕에는 불멸의 무엇이 내재해 있습니다. 참된 인간의 희생은 자기 안에서, 남 안에서 시간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초극하여 더 깊이 육체적인 생명까지 초극하여 이 신적인 불멸의 혼을 깊이 인식할 때, 그리고 그 신비에 접할 때 시작될 것입니다.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기도합시다. 기도는 기도하면서 어떻게 기도하는지 알게 되고 기도하는 마음 속에 믿음이 찾아집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육신이 자신의 마음과 마주 앉아 보자는 것입니다. 교회에 관계없이 초월하는 자세로 명상할 때 빛을 구할 수 있는 것이고, 또 내적으로 풍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합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어릴 때부터 신부가 되기 싫었습니다.
어느 의미로는 자주 '신부가 될 것인가'하는 회의를 가졌습니다.
"제가 여기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고 어머니가 가라고 해서 왔고....."
"신부는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되기 싫다고 해서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이 방에서 나가"
그 때는 내가 정말 신부가 될 것인가에 대한 기로에 서 있던 때인지라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 여인을 완전히 사랑할 자신도 없고, 그보다는 오히려 보다 많은 이들을 위해 도움을 주는 일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거절했습니다.
다시 신학교에 가느냐 안 가느냐로 망설이면서 생각해 보니, 나 자신이 너무 결함이 많았습니다.
"너는 결점이 많기 때문에 신부가 되어야 한다"
내가 신부가 안되었다면, 무엇을 해 먹고 살았을까요? 장사하자니 주변머리가 없고, 땅을 파자니 기력이 달리고......"
한 인간으로서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내가 누구를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한 일도 없고, 세월이 지니면서 덕을 자꾸 닦아야 되는데, 그것도 안 됩니다. 변덕만 자꾸 늘어 가는데, 변덕도 덕입니까?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을 한 가지 말한다면, 정말 잘 살고 싶습니다. 잘 살려면 나 자신이 완전히 죽어야 하는데, 나는 아직도 그렇게 죽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 마디가 삶을 파괴합니다. 쓰디쓴 말 한마디가 증오의 씨를 뿌리고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을 끕니다. 은혜스런 말 한 마디가 길을 평탄케 하고 즐거운 말 한 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합니다. 때에 맞는 말 한 마디가 긴장을 풀어주고 사랑의 말 한 마디가 축복을 줍니다.)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 김수환 지음 / 사람과사람 출판 / 1994.04
충주 이학사 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