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나눔

다시 사는 진리(로마)

가랑비01 2007. 11. 6. 23:48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사는 진리  

                                                                                         출처: 항동교회 김태한 원글보기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어야 하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이미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떻게 그대로 죄 가운데 살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그의 죽음과 연합하는 세례를 받은 것임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우리는 그의 죽음에 함께 참여하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와 함께 묻힌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죽은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같이 우리도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다시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에서 그와 연합한 자가 되었다면 그의 부활하심과 같은 부활에서 그와 연합한 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우리 몸을 없이하여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죽은 사람은 벌써 죄의 권세에서 해방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우리가 살 것을 믿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죽은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다시는 죽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하면 죽음이 결코 그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하여 단 한 번만 죽으신 것이며 그가 지금 살아계신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여 산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죄가 여러분의 줄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여러분이 육체의 욕정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어주어 불의의 도구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난 자로서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 온 몸이 하나님의 의의 도구가 되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율법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아래 있는 것이므로 죄가 여러분을 주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죄를 지어도 좋다는 말이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이 자기를 종으로 내어주어 어떤 사람에게 복종한다면 여러분이 복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데 그러면 여러분은 죽음에 이르는 죄의 종이 되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전해받은 가르침에서 찾은 진리를 마음을 다하여 순종함으로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해력이 약하기 때문에 내가 인간적인 방식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이 전에 자기 자기 지체를 더러움과 불법의 종으로 삼아 갈수록 더 불법에 빠졌던 것과 같이 이제는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종으로 삼아 거룩하게 되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죄의 종이었을 때에는 의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부끄러워하고 있는 여러분의 지난날의 생활에서 여러분은 어떤 열매를 거두었습니까? 그런 생활의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율법을 아는 사람이므로 내가 말합니다. 율법은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만 그 사람을 주관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결혼한 여인이 그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법을 따라 그에게 매여 있으나 남편이 죽으면 남편에 대한 법에서 해방됩니다.

 

 따라서 자기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에 그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가면 그 여자는 간음한 여인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었을 경우에는 법에서 해방되는 것이므로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간음한 여인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몸을 통하여 율법에 대해서는 죽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다른 이, 곧 죽은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분에게 가서 하나님께 드릴 열매를 맺기 위한 것입니다. 이전에 우리가 육신을 위해 살 때에는 율법에 의하여 일어나는 죄의 욕정이 우리 몸의 지체들 안에서 작용하여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우리를 얽어매던 율법에 대해서는 죽고 그 속박에서 벗어났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법조문의 낡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새로운 방식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것입니까? 율법 자체가 죄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아니었다면 나는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탐심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죄는 이 계명을 통하여 기회를 얻어 내 속에서 온갖 탐욕을 일으켰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입니다. 내가 전에는 율법 없이 살았는데 계명이 들어오자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생명으로 인도해야 할 계명이 도리어 나를 죽음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죄가 계명을 통하여 기회를 얻어 나를 속이고 또 그 계명으로 나를 죽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 자체는 거룩합니다. 그리고 계명도 거룩하고 옳고 선합니다.

 

 그러면 그 선한 것이 나에게 죽음을 가져왔다는 말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나를 죽인 것은 죄입니다. 죄가 그 선한 것을 방편으로 하여 내게 죽음을 가져 온 것입니다. 그래서 죄는 죄로서의 본성을 드러낸 것이며 계명 때문에 죄는 더욱 악한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율법이 영적인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나는 육적인 존재로서 팔린 몸이 되어 죄 아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지 않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한다면 그것은 율법이 옳다는 것을 내가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런 일을 하는 장본인은 나 자신이라기보다는 내 안에 있는 죄일 것입니다. 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는 선한 것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선을 행하려는 의욕은 내게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행한다면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에서 나는 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곧 선을 행하려는 내게 악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있으나 내 지체 속에 다른 법이 있어 내 마음의 율법에 대항하여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 나를 사로잡아 가두는 것을 봅니다.

 

 아, 나는 얼마나 비참한 인간입니까?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주겠습니까?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주신 하나님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고 육으로는 죄의 법에 복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죄받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인간성 때문에 약해져서 하지 못했던 것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는 죄를 속하기 위하여 그의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보내시고 그의 육에다가 죄를 정하셨습니다. 이것은 육을 따라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서 율법의 요구를 완성시키려는 것입니다.

 

 육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영을 따라 사는 사람은 영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영을 따라 사는 사람은 영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을 따라 살려는 마음은 죽음에 이르고 영을 따라 살려는 마음은 생명과 평안을 누립니다.

 

 육을 따라 살려는 마음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고 또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육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계시다면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영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다면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었을지라도 영은 의롭다함을 얻었으므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은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이의 영이 여러분 안에 계신 그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우리가 육을 따라 살아야 할 책임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육을 따라 살면 여러분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으로 육적인 행위를 죽이면 살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여러분은 다시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노예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아들이 되게 하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에 의하여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영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자녀라면 상속자도 될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할 사람이 됩니다. 

 

 현재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에 종속된 것은 그들의 자의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종속되게 하신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피조물이 사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영광의 자유를 함께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의 처음 열매를 가진 우리 자신들도 속으로 신음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로 삼으시고 우리의 몸을 온전히 속량해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희망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또 바랄 까닭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랄 때에는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성령도 또한 연약한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도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친히 말로 다 할 수 없는 신음으로 하나님게 중보의 기도를 드려 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 지를 압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대신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하나님의 계획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함께 일하셔서 모든 것을 선하게 해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을 그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시려고 미리 작정하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아들을 많은 형제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사람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에 있어서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낌없이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그분이  어찌 그와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게서 택하신 자들을 누가 감히 소송하겠습니까? 의롭다고 선고하신 이가 하나님이신데 누가 능히 정죄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 오른편에 계시고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해 주시는 분입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성서에 "우리는 종일 당신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한 양과 같이 천대를 받습니다"라고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이기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이나 삶이나 천사나 주관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권세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그 밖에 어떤 피조물이라고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