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나눔

소명과 사랑(고린도)

가랑비01 2007. 11. 18. 10:02

그리스도 안에서 소명과 사랑

 

 

 형제들이여,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에 대하여 여러분이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여러분은 이방사람이었을 때에 끌리는 대로 말못하는 우상에게 끌려 다녔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알게 하는 것입니다만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는 저주 받으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요 또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는 주"라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의 선물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같은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며 섬기는 일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같은 주를 섬기는 것입니다. 일을 운영하는데도 여러가지가 있으나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것을 운영하시는 이는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이 나타나 주신 것은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지식의 말씀을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병고치는 은혜를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영을 분간하는 능력을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방언을 말하는 말하는 능력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방언을 통역하는 능력을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은 한 분이신 같은 성령의 활동입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많은 지체를 가진 한 몸과 같습니다. 몸은 하나지만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한 몸인 것과 같이 우리는 유대사람이든 헬라사람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어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몸은 한 지체로 된 것이 아니라 여러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비록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하고 말한다 하더라도 발이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하고 말한다 하더라도 귀가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온 몸이 다 눈이라면 어떻게 듣겠습니까? 또 온 몸이 다 귀라면 냄새는 어떻게 맡겠습니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우리 몸에 각각 다른 여러 지체를 두셨습니다.  지체가 한 가지 뿐이라면 몸은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지체는 여럿이나 몸은 하나입니다.그래서 눈이 손에게 "너는 내게 소용이 없다"고 말할 수 없으며 머리가 발에게 "너는 내게 소용이 없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그 뿐만아니라 몸 가운데 비교적 약하다고 보이는 지체가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그리고 몸 거운데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것들을 더욱 귀한 것으로 입히고 보기 흉한 것들을 더욱 더 아름답게 꾸며 줍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지체들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변변하지 않은 지체들을 더욱 귀하게 다루셔서 몸에 조화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서로 같이 걱정하고록 하신 것입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같이 고통을 당합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같이 즐거워 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며 각각 그 지체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여러 직분을 두셨는데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예언자요, 세째는 교사요, 다음은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요, 다음은 병고치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요, 남을 도와 주는 사람이요, 관리하는 사람이요, 여러 가지 방언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모두 사도이겠습니까? 모두 예언자이겠습니까?모두 교사이겠습니까? 모두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겠습니까? 모두 병고치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겠습니까? 모두 방언을 하는 사람이겠습니까? 모두 통역하는 사람이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은 더 귀중한 은혜의 선물을 열심으로 사모하시오. 내가 이제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가 됩니다.

   내가 예언의 능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모든 신비를 깨달았다 하더라도,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리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비록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 주었다 하더라도 그리고 내 몸을 내주어 불사르게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유익이 없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교만하지 않습니다.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자기 이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성내지 않습니다. 남의 악행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모든 것을 덮어 줍니다. 모든 것을 믿습니다. 모든 것을 바랍니다.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랑은 영원합니다. 그러나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집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온전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예언도 온전하지 못합니다. 온전한 것이 오는 때 온전하지 못한 것은 사라집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깨닫는 것도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생각하는 것도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생각하는 것도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 속의 영상같이 희미하게 봅니다. 그러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어느 부분 밖에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가지는 언제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제일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힘써 구하시오. 그리고 성령의 은사, 특히 예언을 열심으로 구하시오.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신비한 것을 말하는 것이므로 사람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언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며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방언히는 사람은 자신에게만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사람은 교회에 덕을 세웁니다.

 

 나는 여러분이 모두 방언을 말하기를 원합니다만 그보다도 예언하는 것을 더욱 원합니다. 방언을 말함과 동시에 그것을 통역헤서 교회에 덕을 세운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방언하는 사람보다 예언하는 사람이 낫습니다.

 

 형제들이여, 내가 가령 여러분에게 가서 하나님의 계시와 지식과 예언과 교훈을 말하지 않고 여러분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만 말한다면 여러분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피리나 거문고 같은 생명없는 악기도 그 소리의 변화가 똑똑치 못하다면 그 연주하는 음악이 무엇인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또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낸다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방언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면 그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어�게 알겠습니까? 결국 여러분은 허공을 향하여 말한 것이 됩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뜻없는 소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한다면 그 말하는 사람에게 내가 외국인이 되고 그도 내게 외국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성령의 은사를 열심으로 사모하는 사람들이니 만큼 무엇보다도 먼저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 더욱 풍성한 은혜를 구하시오.

 

 그러므로 방언하는 사람은 그 방언을 통역할 수 있는 은혜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만일 내가 방언으로 기도한다면 내 영으로 기도하는 것이 됩니다만 내 이성에는 아무 소득이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어�게 해야 합니가? 나는 영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그러나 또 이성으로 찬미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당신이 만일 영으로만 감사를 드린다면 그 자리에 와 있는 아직 교회에 생소한 사람들이 당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어떻게 당신의 감사하는 말에 "아멘"할 수 있겠습니가? 당신은 훌륭한 감사를 드렸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덕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 중 누구보다도 더 많이 방언을 말한다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내가 방언으로 일만 마디 말을 하는 것보다 내 이성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여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형제들이여, 생각하는 데는 아이같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악에 대해서는 아이가 되고 생각하는 데는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율법에 "내가 외국 사람의 혀와 외국 사람의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고 주께서 말씀하신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사람들을 위한 표징이 아니라 불신자들을 위한 표징이며 예언은 불신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만일 온 교회가 함께 모여서 모두 방언을 말한다면 교회 생활에 서투른 사람이나 불신자가 거기 들어왔을 때 그들의 양심이 전체 회중들 앞에서 가책을 받고 심판을 받아 그 마음 속 비밀까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그래서 그들은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하고 "참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운데 계십니다"하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러면 형제들이여,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여러분이 함께 예배할 때에 찬미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의 계시를 말하는 사람도 있고 방언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통역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만 모든 것을 교회에 덕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방언을 말할 때에는 둘이나 셋이 차례로 말하고 한 사람은 통역을 해야 합니다. 통역할 사람이 없을 경우에는 교회에서 말하지 말고 자기 자신과 하나님에게만 말할 것입니다. 예언하는 사람도 둘이나 셋이 말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잘 새겨야 합니다.

 

 그러나 앉아있는 다른 사람에게 계시가 임하는 경우에는 먼저 말하던 사람은 잠잠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 사람씩 다 예언을 할 수 있게 되고 또 모든  사람이  배우고 권면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언하는 사람의 영은 그 예언하는 사람에게 통제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 하는 관례에 따라  여자들은 교회 집회에서 잠잠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말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에서도 말한 대로 그들은 복종할 것입니다. 만일 무엇이나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여자가 교회 집회에서 말하는 것은 그 여자에게 부끄러운 일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서 나왔습니까? 또는 여러분에게만 임하셨습니까? 만일 누구든지 자기가 예언자나 또는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인 줄로 생각한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이 글이 주님의 명령이란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도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이여, 예언하는 일에 열성을 다하고 방언하는 것도 금지하지는 말 것입니다. 모든 일을 적절하게 또 질서있게 진행시키기를 바랍니다.

 

                                                                                             (고린도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