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에제키엘
그리스도교의 세례는 죄를 �는 예식이면서 동시에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운 힘을 얻는 예식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새로운 관계가 형성 됩니다. '하나님과 나', '나와 너' 사이에
'죄'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분리되어 있는 상태라고도 하는데 '하나님은 여기에 계시지 않아', '하나님을 만나기에 너무 어려워' 등등 하나님 현존 의식이 없는 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창세기 보면 아담과 하아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먹고 난 후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하나님 눈에 띄지 않게 동산 나무 사이에 숩습니다. 그리고 보니 부부(사람과 사람) 사이에 숨기는 것이 생겼고 그 다음엔 하나님에게 자신을 숨기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인데 그 마음을 숨길 길이 없어 자신의 몸을 가리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생기면 그것을 잊거나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 곧장 이상한 행동으로 대체합니다. 숨기고 숨고 들키지 않으려고 더 깊이 숨기고 숨고....
숨기고 숨는 다는 것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과 멀어진다는 것이고 점점 멀어지면 잊혀지고 결국 함께 있다는 생각도 사라지게 됩니다.
세례, 곧 죄를 �는다는 것은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길을 가겠다는 약속입니다. 인간은 누군가와 함게 있으므로 해서 행복해지는 존재입니다. 그런 관계가 다양해지고 깊어지면 사랑하는 마음도 동시에 점점 커집니다.우리는 그런 훈련을 기도를 통해, 예배를 통해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또 예상치 않는 곳에서 전화라도 오면 기뻐하는 것은 함께 있다는 것의 충만한 느낌을 알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군가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위안이 되고 역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함께 있다는 생각에서 오는 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이려고 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3:17)
예수님에게 가장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준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예수님은 '고난 받는 종'이 되어 마지막 십자가에 매달리기까지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는데 하나님께서 해 주신 이 말씀이 예수님을 어려움과 좌절 속에서도 당신을 구하신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아버지...."하고 마음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와 당신을 부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쏟아 붓는 사랑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있는 다른 것은 다른 무엇보다 위대한 것이며 진정으로 함께 있을 수 있는 것만큼 큰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사이에 만남이 줄어들고 멀어지는 것은 죄의 모습입니다.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이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를 돕는다한들 쓸모없는 일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목숨은 여러분이 돕지 않아도 하나님게서 보살피고 계십니다. 이미 우리는 우리의 손길이 닿지 않는 많은 가난한 이들을 방치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삶에 희망을 거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도 모두 보살피기를 원한다면 한 시도 잠을 잘 수 없을 것입니다. 셰례를 받은 여러분은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함께 있으므로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빕니다. 그것이야말로 참된 희망입니다.
나눔, 그 아름다운 삶 / 에제키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