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 이야기

인문계 고등학교와 대인의 길

가랑비01 2014. 11. 16. 01:25

<인문계 고등학교와 대인의 길>

 

얼마전 서울시내 공립 인문계 고등학교를 방문하였습니다. 신설된 지 10여년 된 미니 고등학교였습니다. 운동장도 미니 운동장으로 축구를 하기에는 턱없이 작았고 한쪽에 농구대 두 개가 덩그런히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그 좁은 운동장조차 중학교와 공유하여야 하니 턱없이 작았습니다.

 

쉬는 시간에 쏟아져 나온 아이들로 운동장은 어깨와 어깨를 부딪치는 시장통처럼 혼잡했습니다. 운동장이 좁은데도 불구하고 한쪽에는 운동장 공간에 버금가는 크기의 주차장이 있었습니다. 차라리 학교 건물을 빌딩화하고 지하주차장 수개층을 건설하고 일층이나 옥상에 대형 운동장을 만들었다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후 수업 중인 교실들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많은 학생들이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다. 고개를 들고 선생님 말씀을 듣는 학생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말로만 듣던 모습을 직접 보게 되니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안타깝고 답답하고 참담했습니다.

 

학교에 와서 잠만 자고 있는 아이들과 형식적으로 자신의 할 일만 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따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수업을 포기한 아이들과 대다수의 아이들을 포기하고 다섯도 되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향해 공허하게 외치고 있는 선생님이 한 공간에 있는 듯하였지만 다른 시공간을 떠도는 상관없는 존재로 보였습니다.

 

왜 아이들이 아이들을 위해 설립된 공립학교에까지 와서 낙오자로 오인되어 무기력하고 헛되이 희망을 잃은 고통 속에 소중한 시간들을 보내야만 하는 지 알 수 없는 대상들에 대한 분노가 솟구쳤습니다.

 

여러 교실을 방문하는 중에 고삼교실 중 하나를 들어갔는데 숨이 턱 막히었습니다. 한여름인데 냉방기가 잘 작동이 되지 않아 아이들이 땀을 줄줄 흘리며 멍하니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규모가 작은 학교에 학생수가 갑자기 늘어나자 과학교실로 운영되던 교실을 고삼교실로 만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냉방기가 약하게 나오는데 수리를 하는 것이 새로 산 것보다 많이 들어서 수리를 하지 못하는 중에 한여름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교실은 건물과 건물이 이어진 모서리진 곳이라 창문이 제대로 나있지 않아서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아서 고삼 아이들은 황금같은 고삼여름의 소중한 시간을 더위에 지치며 힘겹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사립고등학교의 선생님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맡은 바 업무에 최선을 다하지만 공립고등학교는 업무실적에 대한 책임감이 상대적으로 느슨하다고 합니다. 공립학교가 신설될 때는 우수한 선생님들이 지원을 해서 활력 넘치는 학교가 되지만 미니공립학교는 신설 초기가 지나면 상대적으로 선생님들이 기피하게 된다고 합니다. 큰 학교에 비해 미니학교는 선생님들이 복수의 업무를 담당하게 되어 힘들고 승진기회가 좀더 적다고들 합니다.

 

교무실에 들어갔더니 몇몇 선생님들이 교육혁신프로그램을 짜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프로젝트가 채택되면 해당 선생님과 학교에 유익한 점이 많은 듯하였습니다. 혁신프로젝트나 학교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교조 선생님이라 나쁜 분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전교조가 아니라서 좋은 분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전교조니 전교조가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선생님이 아이들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무력한 아이들이 많다고 하지만 열정적인 교사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학교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은 첫째가 학교장의 마인드가 어디에 있느냐, 선생님들이 어떻게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가, 그리고 학교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의 학업태도가 어떠한가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생의 자질에 가장 많이 기여하는 건 학부모입니다.

 

오늘의 결과는 모두가 반성해야 될 문제라고 봅니다. 잘하는 친구는 잘하는 친구대로 조금 늦게 가는 친구는 늦게 가는 대로 열심을 다할 수 있는 분위기로 만들어가 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고 학교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고등학교 성적으로 인생의 등급을 매기는 어리석은 생각과 제도는 버려져야 합니다.

 

사람은 각기 조상을 통해 변화 발전되어온 유전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과 자신의 의지에 따라 개성, 능력, 특기, 기호, 흥미 등이 모두 다릅니다. 학생 자신의 고유한 능력을 발견하고 그 재능을 개발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부모와 선생님과 사회가 해야 할 몫입니다. 무한히 발전할 아이들을 규격화하고 상품화하여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그 능력을 믿고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지치지 않고 보람으로 다가올 수 있게 모든 것이 개선되어야하고 학생들도 선생의 가르침에 대해 열정적으로 배워가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학업성적이 우수하게 나오는 학교의 분위기를 보면 아이들도 열심이고 부모들도 관심이 높고 선생님들도 아이들에 대할 때 존중해주고 그래서 아이들은 존중받는 기쁨을 갖게 되고 ......선생님들은 가르치는 보람을 갖게 됩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도 이런 학교를 한번 꿈꾸고 만들어 보면 좋겠습니다.

 

생활의 여유가 없어서 학원을 보내지 못하는 우리의 조건을 안타까워하며... 미리 포기해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청춘의 모습을 아파하며.... 조금이라도 열심히 하고 싶어 하는 몇몇 친구들을 격려하며.... 그리고 선생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잘 가르쳐야 한다는 소신을 갖으면서 .... 모두가 애정을 담아 아이들이 즐겁게 가고 싶어 하고 뛰어놀 수 있는 포근하고 행복한 고향 같은 학교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학교다운 학교를 만들어가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더 정확히 말하면 교육이 추구하는 이상형이 있어야 하고 그 이상형으로 인도하는 스승이 있어야 하고 적극적으로 변화하려는 제자가 있어야 하고 그 변화를 지원하는 가정과 제도와 시설이 있어야 합니다.

 

옛사람들의 방식이 꼭 정답은 아니지만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디딤돌입니다. 과거가 쌓이고 돌이켜져서 지혜가 되기도 합니다. 동양고전이 지향하는 이상형은 성인이 되는 것이며 성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대인의 길은 명덕을 밝히고 이웃과 친애하며 변화시키며 최고의 선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대인이 배워야할 학문인 대학의 길은 모든 사서오경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서서오경의 끝자락에 있는 주역도 점을 치기 위한 것인 듯하지만 최고로 길한 이상상태는 하늘과 땅과의 관계를 완만히 잘 활용하고 하늘과 땅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주역의 6효는 공간과 시간의 순서이기도 하면서 동시이기도 합니다. 시간적으로는 과거를 밝히고 현재를 변화시키고 미래를 최고의 상태로 만드는 방식은 대학지도와 같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는 편의상 나녈해서 보여주었지만 대학지도와 주역의 순서는 동시이기도 하고 역순이 되기도 하고 선택적이기도 합니다.

 

대학의 세 가지 길과 주역의 여섯 가지 길은 모두 서론, 본론, 결론과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 순서대로 진행되는 과정이면서 동시적이면서 역순이면서 선택적입니다. 그 과정을 모두 바라보고 인식하고 선택하고 조화시키는 몫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명덕(明德)은 밝은 덕입니다. 명은 해와 달이고, 음양이고 하늘과 땅입니다. 덕은 사람과 곧은 마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마음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하나가 되는 바로 그 큰 마음이 덕입니다.

 

명덕은 모든 사람들과 함께하며 천지와 더불어 하나가 된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는 주역의 이상형이도 합니다. 명덕을 밝힌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천지와 하나 되게 하는 것이므로 명덕은 타고난 성품을 깨닫고 하나 되는 것이다.

 

명덕은 내 개인의 이기심을 추구하는 마음이 아니라 천지와 더불어 하나된 사람의 마음이므로 덕은 천지와 사람의 관계에 의하여 구성됩니다. 덕이란 천지와 사람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 소통에 필요한 언어는 중요한 하나의 수단입니다.

 

중용에서는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은 하늘의 도리이고, 하늘로부터 받은 천성을 닮아가고 본성에 이르려고 정성()을 다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믿음()이란 한자어는 다름 사람의 말로 이루어졌고 정성을 기울인다는 말은 말한 것을 이룬다는 한자어로 이루어졌습니다.

 

덕은 사람과 천지의 본성과 하나되는 그 마음입니다. 덕은 이웃과 하나된 마음입니다. 인은 두 사람의 관계이며 서로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인의예지 한 가운데 믿을 신이 있는 건 천지와 더불어 하나된 사람의 마음입니다. 측은지심은 개인의 이기적인 욕망을 버리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명덕은 나를 알고 나를 버리는 것에서 출발하여 이웃을 새롭게 변화시키어 커다란 자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나를 버리고 참나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역사상 명덕을 밝히고 성인이 되신 분을 찾으라면 어느 분을 들 수 있을까요? 명덕이란 천지와 더불어 하나된 마음입니다. 현대어로 정확한 번역은 아니지만 하늘과 땅 가운데 태양태음이 하나된 태극과 같은 사람을 조상님들은 붉은알지라고 불렀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환인, 환웅, 단군왕검(밝달임금), 주몽(불구내), 소서노(불구내), 밝혁거세(불구내) 등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하늘신과 하나가 된 깨달으신 분으로 새로운 세상을 여신분입니다. 이분들은 중국식으로는 복희씨, 태조라는 호칭입니다. 그 분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신 분들은 누리(유리), 누르하치로 중국식으로는 황제(黃帝), 세종이라는 호칭입니다.

 

인문계 고등학교가 추구하는 이상형은 동양고전이 추구하는 대인의 길이라는 이상형에서 참고할 만한 점이 많습니다. 명덕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순간 여기 나에게 있습니다. 내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이웃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모두 행복한 세상은 우리들 옆에 있습니다.

 

우린 격물치지수기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순서대로 실천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순서대로이고 동시이기도 하고 역순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욕망이 일어나기 전에에 측은지심을 발휘하여 천하를 위한 어떤 커다란 선을 실천했다면 이는 평천하를 위해 힘쓰는 자체가 바로 수신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