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지?
힘들지? (160711)
폭염으로 잠시 서 있기도 힘들 날인데 본격적으로 주특기 훈련하느라 고생이 많겠다. 훈련병 수료식에 가지 못했지만 사진으로 보니 몸은 힘들지만 구릿빛으로 붉게 물든 팔뚝과 초롱초롱 자신에 차 있는 눈망울을 보니 대견스러웠다.
81미리 박격포를 보직 선물로 받았다지. 81미리 박격포는 육군 꿀보직 오대천왕에 들어가는 자랑스런 추억의 주특기라고 하더구나. 보병부대의 성패는 최강화력 박격포에 달려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 최강화력을 짊어지고 이동하는 것은 고통스럽고 무겁지만 그 만큼 보람되고 중요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박격포 훈련은 포신을 어깨에 들쳐메고 행군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사수와 부사수와 탄약수가 한 호흡이 되어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발사하는 것이 두 번째이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하느님께서는 감당할 시련을 주신다고 한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결이 있기 마련이다.
구슬은 결에 따라서 갈아야 하고 돌은 결에 따라 쪼개야 한다.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을 망치로 두들겨 부수기 위하여서는 온 힘을 기울여 세게 치는 것이 아니라 강약을 겸하여 부드러우면서 물흐르듯이 결에 따라 춤을 추며 팔의 자연스런 반동으로 휘둘러야 한다.
박격포 조포훈련의 기본은 차려포에 있고, 차려포는 사수와 탄약수의 협동이 중요하다고 한다. 박격포 훈련은 팀원 서로간의 신뢰가 중요하다. 포신과 포다리와 포판을 다루는 팀원이 서로 하나 되어 빠르고 정확하게 설치하여 발사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한다.
박격포를 빨리 설치하고 발사하는 방법 중에 가장 빠른 길은 다른 팀원들이 하는 역할을 이해하고 내가 맡은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바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이다.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면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가가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해야할 것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즐거운 마음이 되면 일도 쉽고 불현듯 일이 이루어지게 된다.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하는 것은 바로 동서양 사상에 공통되는 가장 중요한 기본 흐름이다. 바로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밝은 지혜가 바로 역지사지이다. 예수님은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고 했고, 공자님은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고 했다.
역(易)이 들어가는 말로 사서삼경 중에 하나인 주역(周易)이 있다. 주(周)는 ‘두루주’로 천지사방을 포함한다는 공간적인 의미와 ‘나라주’로 주나라 때라는 시간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 易은 ‘바뀐다’와 ‘쉽다’의 뜻이 있으므로, ‘때에 따라서 변화한다’는 시간성과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는 객관성을 뜻한다고 한다. 바로 봄여름가을겨울이 알기 쉽게 변해가는 모습을 이해하고 동서남북의 다양한 위치를 쉽게 이해하여 과거와 미래를 돌아보며 여러 경우의 장소를 생각하며 현재의 시간과 위치에 충실하는 것이다. 현재의 위치에서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바라보고 가장 알맞은 행동을 하는 것이 역이며 중용이다. 행복한 삶의 지혜는 입장을 바꾸어보는 데에 있는 듯하다.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And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darkness was upon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 of the waters.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The same was in the biginning with God. All things were made by him, and without him was not any thing made that was made. in him was life, and the life was the light of men. And the light shineth in darkness. and the darkness comprehended it not.
태초에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태초는 커다란 한 처음입니다. 커다한 한 처음은 태극이면서 무극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창조가 시작된 그 시간은 아주 먼 과거이며 아주 먼 미래이며 바로 지금입니다. 하느님의 창조가 시작된 공간은 태초의 우주이며 미래의의 세상이며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나 자신입니다.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기 시작하셨는데 그 시작은 시작이면서 시작이 아니었습니다. 땅은 모양을 갖추지 않았고 어둠은 깊음 위에 있었고 하느님의 성령께서는 생명의 물 위에서 운행하고 계셨습니다.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과 창조하기 전은 순간이며 영원이며 동시간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하시기 전과 구원의 역사를 이룩한 세상은 둘이면서 하나였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어둠이 깊음 위에 있었을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생명의 빛으로 비추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시련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어둠 속에 숨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참 빛은 암탉이 알을 품듯이 이 세상을 감싸고 보듬어주고 보살피고 생명의 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시련은 새로운 창조를 위한 발판이며 더 큰 역사를 이룩하려는 하느님의 은총이며 은혜였습니다.
문제는 하느님을 믿고 신뢰하여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느냐였습니다. 발상의 전환을 하여 하느님의 사랑의 빛을 믿고 자신을 하느님께 맡기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하시고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고 하느님의 형상을 닮은 온전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음 은 사람들의 마음 상태였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믿고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순간 하느님의 은혜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모든 것이 그를 통하여 생겨났으며 그를 통하지 않고 생겨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습니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빛이 어둠 속에 비치고 있었는데 어둠이 빛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둠이 입장을 바꾸어 참빛을 바라보는 역지사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말을 믿으며 내 이웃을 믿으며...
은혜와 사랑의 하느님께서 늘 함께 하시는 것을 믿으며...
하느님의 포근하신 품에 모든 것을 맡기길 바라면서.....
가랑비16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