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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백제는 어디에 있었나-흠정만주 원류고라는 책에서

가랑비01 2007. 1. 31. 00:45
요동을 지배 했다는 고구려 역사를 가지고 왈가 왈부 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그에 못지 않게 사라지고 축소된 백제의 역사또한 그 비중이 고구려사 못지 않다. 다만 이것이 이미 신라인인 김부식 할아버지가 쓴 사국사기가 일제의 입맛에 맞아서 인지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바람에 자동적으로 축소된 부분이 없진 않지만...

그러나 그 사라진 부분이 바로 그들의 역사책에는 기록이 남아 있으니 자기나라 역사책까지는 없애고 불태우지는 못할 것 아니겠는가? 그들의 역사서가 기술하고 있는 백제사의 일부분이다.



<중국 요서지역을 지배한 백제>


백제가 요서(遼西)를 지배했다는 최초의 기록은 ‘송서(宋書)’ 97권 백제전에 실려 있다. ‘고구려가 요동을 지배하고 백제는 요서를 지배했는데 백제의 소치(所治)는 진평군 진평현이다.’ 이 기록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백제의 소치(所治)’라는 표현이다. ‘치(治)’는 고대사회에서 도성을 가리키는 용어로 군치(郡治) 현치(縣治)일 경우에는 지방장관이 거주하는 군청, 현청 소재지를 뜻하고 국가의 소치(所治)는 소도(所都) 즉 국도를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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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때 편찬된 ‘흠정만주원류고’에서는 이런 고기록을 근거로 ‘백제의 국도는 요서에 있었다(國都在遼西)’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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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수도가 있었다는 요서 진평군은 과연 중국의 어느 지역일까. 마단림(馬端臨)이 지은 ‘통고(通考)’에는 그 지역을 ‘당나라 때 유성과 북평의 중간지점’이라 했는데 ‘흠정만주원류고’에서는 다시 마단림의 견해를 기초로 이곳을 청나라 때 금주, 영원, 광녕 일대라 추정했다.




그러면 백제가 중국의 요서 지역에 국도를 정했다가 한반도 지역으로 도읍을 옮긴 시기는 언제쯤이었을까. ‘흠정만주원류고’는 그 시기를 양나라 천감(天監)시대로 보았다. 천감이란 중국 양나라 무제의 연호로 천감 1년은 서기 502년이며 신라 지증왕 3년, 고구려 문자왕 11년, 백제 무령왕 2년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백제 수도가 본래는 요서에 있다가 무령왕 때 비로소 남쪽 한반도로 천도해 왔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양서(梁書)’ 백제열전에 있다. “진(晉)나라 때 요서, 진평 두 군을 차지하고 있던 백제가 남제(南齊) 천감시대에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패하여 국력이 크게 약해지자 그 후 남한(南韓)지역으로 옮겨갔다.”



‘삼국유사’는 ‘구당서’를 인용하여 ‘백제는 부여의 별종인데…왕의 거처로 동, 서 두 성이 있다’고 했다. ‘북사(北史)’의 백제국에 대한 설명 가운데는 ‘백제의 왕은 동, 서 두 성에서 사는데 하나는 거발성(居拔城)이고 다른 하나는 고마성(古麻城)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고마성의 고마는 곧 곰(熊)을 뜻하므로 웅진성의 우리말인 ‘고마나루’의 ‘고마’를 한자로 음사(音寫)한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지만 거발성은 어떤 성을 가리키는지 우리 학계에서는 아직까지 정설이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흠정만주원류고’는 거발성이 바로 요서의 진평성(晉平城)이라고 적시했다.


중국의 역사학자 허광웨(何光岳)는 '동이원류사’에서 백제의 ‘제(濟)’를 산둥성의 제수(濟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았다. 즉 남쪽으로 내려온 부여족은 부락이 점차 늘어나자 옛 산둥성 ‘제수’로부터 유래한 그 뿌리를 망각하지 않기 위해 나라 이름을 백제라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다.



우리는 그동안 백제의 발상지를 한반도의 하남 위례성으로만 인식했기 때문에 백제라는 나라 이름에 대한 명확한 유래를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나 백제의 발상지가 지금의 산둥성 추현의 부산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백제 국명의 유래도 제수와 연관지어 찾아야 옳다.



지금도 제수는 산둥성을 가로질러 흐른다. 현재 산둥성의 성 소재지 지난(濟南)시는 제수의 남쪽에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수는 옛 사독(四瀆), 즉 강(江), 하(河), 회(淮), 제(濟) 등 사대수(四大水) 중의 하나로 허난성현 서쪽 왕옥산에서 발원해 동쪽으로 흘러 산둥성으로 들어간다. 그 하류는 동북쪽으로 흘러 황하와 함께 바다로 들어간다.




양나라 때 외국사절들의 용모를 그린 그림과 함께 그 나라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덧붙인 ‘양직공도(梁職貢圖)’를 보면 ‘백제국기(百濟國記)’를 인용하여 ‘백제는 옛날의 내이(萊夷)이며 마한족이다’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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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는 우이와 함께 청주(靑州), 즉 오늘의 산둥성 일대에 거주하던 동이족의 하나다(‘서경’ 우공편). 산둥성 내산(萊山) 밑에 살아서 그들을 내이(萊夷)라 불렀는데 내산은 바로 오늘의 칭다오와 옌타이 일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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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정만주원류고’는 청나라 때 편찬된 책이다. 흠정이란 황제의 저술 또는 황제의 칙명에 의해 만들어진 저술을 뜻한다. 청나라 건륭 43년에 아계(阿桂) 등이 칙명을 받들어 편찬한 이 책은 부족, 강역, 산천(山川), 국속(國俗) 네 부문으로 나누어 총 20권으로 간행됐다.



당시 조선은 친명배청(親明排淸)정책을 견지하는 바람에 조선과 청의 관계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따라서 청나라가 한국 고대사를 의도적으로 미화했을 리 만무하다. 단지 자신들의 터전인 만주의 고대사 원류를 추적하다보니 우리 민족사의 한 축인 백제사와 만나게 되고 그것을 가감 없이 사실대로 기술했다고 봐야 한다.



이 ‘만주원류고’에 보이는 백제는 후진적이고 허약한 나라가 아니라 강토는 광대하고, 인구는 많고, 역사는 깊고, 문화는 우수하고, 국력은 강대한 대제국이었다. 출처 http://cafe.naver.com/gando/1420

출처 : Tong - 유니콘사랑님의 배달민족의역사(고구려)통

출처 : 학성산의 행복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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