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이야기

입학식

가랑비01 2005. 4. 5. 16:11

 

         ㅡㅡ <입학식>ㅡㅡ
2005년 3월 4일 화창하지만 약간 쌀쌀한 봄날



둘째 아들이 유치원에 입학했다.

매장문에 잠깐 외출한다고 적어 놓고 유치원을 향했다. 이번에 둘째 아이를 보내게 된 유치원은 큰 아이를 보냈던 설 유치원이다.

유치원 가는 골목길에 들어서니 큰 아이와 걸어서 유치원에 갈 때 보았던 나무들이 겨우네 움추렸던 기지개를 켜고 새 봄을 맞이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눈에 익은 나무들을 바라보며 큰 아이와 함께 했던 기억들이 새롭다. 큰 아이와 함께 했 던 정겨운 골목을 보는 순간 걸음을 빨리 떼어놓을 수가 없다.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은 듯한 기분으로 추억의 장면들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유치원에 도착하니 많은 학부형들이 모여 있고 원장 선생님과 여러 선생님이 반가와 한다. 학부형 중에 알고 지내 던 분들이 아는 체를 했다. 둘째 아이는 이제 38개월이 지나서 가장 어리고 아기 같다. 반면에 학부형 중에 울 옆지기와 나의 합산 나이가 단연 제일 많아 보였다.

요즈음에는 유치원에 보내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많은 망설임 끝에 입학을 결정해야 했다. 큰 아이가 즐겁게 다녔고 믿을 만하며 가까운 곳에 위치해서 설 유치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결정적으로 옆지기는 졸업 시 두 명 이상의 자녀를 졸업시키는 엄마에게 주는 '장한 어머니 상'을 타고 싶어 5년 전부터 부러워하여 심중으로 설 유치원에 꼭 보내고 싶은 눈치였다.

이제 울 아이는 응석받이 아가에서 많은 친구들과 만나면서 정서가 안정되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랄 것을 믿으며 연세가 지긋하신 원장 선생님이 손자를 보살피듯이 유심히 살피고 다정히 보듬어 주리라 기대한다.

보육기관은 시설이나 선생님들의 학식보다는 아이들이 편안해 하고 맘껏 뛰어 놀 수 있고, 믿고 맡길 수 있는 책임감이 많은 선생님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또한 어떤 훌륭한 유치원인가 보다는 내 아이의 정서와 어울리는 유치원이 가장 좋은 유치원 인 듯하다. 한마디로 내 아이와 궁합이 잘 맞는 유치원이 제일 좋은 유치원 일 듯하다.

큰 아이가 둘째 나이 정도 됐을 때 어떤 어린이집에 보냈다. 한 번은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집에 와서 물어보니 다른 아이들이 지붕차 타는 것을 못 타게 위에 올라가서 큰 대자로 막다가 큰애들이 끌어내려 몇 명이서 두들겨서 그랬다고 한다.

집이 장난감점을 하니 모든 장난감이 우리 집에서 다른 아이들이 얻어 가는 거라고 생각해서 모든 장난감은 우리 것이라고 큰 아이는 생각했답니다. 심지어 다른 아이들이 장난감을 흐트려 놓으면 매장에서 아빠가 하듯이 화를 내며 장난감을 어린이집에서도 정리했답니다.

어느 날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다 보니 아이들이 뛰쳐 나와 길거리로 혼자 나 온 것을 데려다 준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나 보니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을 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철저히 이중으로 잠가 놓게 되었다. 아이들은 답답해하고 지루해 했다. 어른들도 하루 종일 건물 안에서만 꼼짝 안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했다.

아이가 힘들어 하기에 몇 개월 쉬다가 아는 유치원에 보내게 되었다. 우리 아이는 매장에 있기 때문에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잠을 졸릴 때 적절히 충분히 자지 못하니, 틈나는 대로 피곤하면 잠을 재워 줄 것을 특별히 부탁했더니 그것은 걱정하지 말고 안심하고 맡기라고 해서 다니게 되었다. 유치원은 두 개 층을 쓰는데 윗 층 방들이 있어서 아이들이 충분히 휴식을 취 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유치원을 다닌 지 얼마 지나서 아침에 아이가 눈을 뜨자마자,"아빠! 나 유치원 안 갈 거야"한다. 울 첫아이는 잘 울지도 않고 의사표현을 많이 하지 않고 항상 웃는 편이다. 나는 의사표현까지 하다니 하면서도 웃으며 무심히 넘기고 말았다.

수 년이 지난 지금 와서 문득 생각컨데 어린 마음에 얼마나 가기 싫었으면 자기 나름대로 부모에게 안간힘을 써서 알리려 했을까 생각된다.이 일만 생각하면 부모로서 아이에게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도 못하는 허깨비였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두어 달 지난 어느 날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눈을 다쳐서 피를 흘리고 있다고 한다. 얼른 달려가서 보니 아이는 유치원 방 한가운데 서서 눈에 피를 흘리며 울고 있었다. 교사는 얼마나 중요한 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응급조치 내지는 사무실로 데리고 가서 아이를 진정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이 혼자 울고 있었다.

오직 동갑내기 여자애 하나만 안타까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자세히 상처를 쳐다보니 다행이 눈은 다치지 않고 눈 주위에 상처가 나 있었다. 사무실로 가서 원인을 물어 보니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일단 아이를 데리고 아는 병원에 데리고 가서 진찰하니 상처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흉터는 남겠다고 한다.

바늘로 꿰매도 흉터가 남고 흉터의 크기는 자라면서 커질 수도 있고 그대로 일 수도 있으며, 흉터가 안 보이게 하려면 성인이 되어서 성형 수술 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어렸을 땐 그 정도 상처는 많이 생기던 일이어서 치료하고 그냥 그대로 두기로 했으나 속이 상하였다. 지금도 눈 밑에 그 때의 상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사람 사는데 우여곡절이 있을 수 있다고 위안을 삼으며 며칠 후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우리 아이 동갑여자아이가 길다랗고 좁은 책상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 옆에선 피아노 교습으로 시끄럽고 한쪽에서는 방과 후 미술 지도로 혼란스러웠다.

원래 두 개 층을 유치원으로 사용한다고 해 놓고 윗층은 살림집으로 쓰고 아래 층 한층 스무 평 정도에 육십 여명의 아이들이 북적대니 아이들이 스트레스가 쌓이고 졸릴 땐 책상에서 잠을 자는 것이었다. 울아이도 그렇게 잘 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고 그 여자애 엄마도 알게되면 속상해 할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그날 나를 본 아들은,"아빠 나 다쳤어!"하면서 다리를 보여 준다. 발등의 살갛이 벗겨지고 화상을 입은 것같이 짓 물려져 있었다. 아이가 미끄럼을 타고 있는데 형들이 빨리 내려가라고 위에서 밀어서 발등이 까지고 열이 나게 되어서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한달 등록비를 낸 지 며칠 안됐지만 그 날부터 유치원을 그만 두게 하였다.

그 후 몇 개월이 지나서 동네 아주머니에게 아이를 집에 있게 하니 불편하다고 했더니 근처 골목에 있는 설 유치원을 소개시켜 주었다. 설 유치원은 재래식 기와집을 약간 개조해서 쓰고 있었는데 건물은 허술했으나, 마당이 있고 화단에 화초가 심어져 있고 그네와 시소 등이 있었다. 가끔은 새들도 노래 부르고 아이들은 마당에서 실컷 뛰어 놀아 즐겁게 유치원에 다녔다.

큰 아이는 그 때부터 이 년 반 동안을 빠지지 않고 즐겁게 유치원을 잘 다녔으며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면 유치원에 가지 못해 서운해했다. 유치원 가기를 매우 좋아했다. 특히 아주 가까운 거리인데 유치원 통학버스 타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아마도 처음에는 버스 타고 오는 재미에 유치원에 기쁘게 다닌 듯하다.

특히 설 유치원에는 한 분의 여선생이 아이들을 애지중지 돌보고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은 꼭 집에까지 데리고 가서 끝까지 안전하게 부모님에게 데려다 주어서 인상적이었다.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고 하지만 그 사람의 속마음까지 들여다보며 마음을 주고받으며 만난 사람은 손으로 꼽게 된다. 울 아이 인제 부모 이외의 친구와 선생을 만남을 시작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듬뿍 받아 정서가 풍부해지고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이제 이 세상의 모든 걸 자기 귀로 듣고 자기 눈으로 볼 줄 알며 씩씩하게 첫 걸음을 힘차게 걷기를 바란다.

 

ㅡㅡ 항상 건강하고 슬기롭게 자라기를ㅡㅡ


아이야! 폭포수가 쏟아지듯이 주체할 수 없도록 쏟아져 내리는 부모의 사랑은 인간의 소산이 아니라 우주를 지배하는 힘이란다.

 꽃들이 만발한 꽃밭이 되고, 새싹 싱그럽게 돋는 드넓은 초원이 되어라.

눈부신 햇살이 가득 넘치는 하늘이 되어라.

(조정래님의 글에서)

 

 

그림을 그릴 줄 몰라도
하늘하늘 구름이 조화를 이루고 

노래를 부를 줄 몰라도
굽이굽이 시냇물이 흘러가고

문장을 꾸밀 줄 몰라도
산들산들 봄바람이 속삭이네.


밤을 지새우고 새벽이 오는데도
고단한 몸 누일 줄 모르는 야생화는
꾸벅꾸벅 졸면서도 향기롭게 피어나고.

어둠이 걷히는 파릇파릇 산자락엔
피곤한 보리나무 소리소리 외치며
지글지글 불타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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