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날
섣달 그믐날, 고향이 그리워 고향 친구들을 급히 호출했습니다. 서로들 각자 생활에 바쁘다 보니 함께 모이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져서 이유불문하고 모두 모이라고 했습니다. 많지 않은 고향친구들, 그 중 몇몇은 이미 우리들 곁을 떠나간 친구들도 있었지만 이 서울하늘아래 남아 있는 친구들이 한사람 한사람 나타나더니 모두 모였습니다.
수 십 년만에 얼굴을 본 친구부터 수 년만에 만나는 그리운 친구들을 모두 보았습니다. 사회적 지위와 생활환경으로 모두의 모습은 많이 변해있었지만 먼 발치에서도 서로를 한 눈에 알아보았습니다. 만나자마자 그리움의 꽃을 피우고 기쁨의 열매를 만들었습니다.
지나고 나면 다 그리움입니다. 함께 살았던 곳, 함께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 그리고 함께 했던 일, 다시는 오지 않을 것들이 다 그리움이었으며 즐거움이었습니다.
밤이 새는 줄 모르고 그리움의 꽃을 피우며 즐거이 놀다가 집에 돌아오니 처음의 즐거웠던 마음은 사라지고 갑자기 허전함과 우울함이 몰려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 마음이 상하고 우울해지는 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젊었을 땐 친구들을 만나고 나면 그저 즐겁고 재미있는 마음만 남았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 대한 미련과 안타까움만 늘어 가는 것일까. 친구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무언지 알 수 없는 미안함으로 온 밤을 뒤척였습니다.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의 실체는 나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