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 이야기

갑오년 창의문

가랑비01 2014. 3. 21. 17:30

<갑오 동학농민혁명 창의문>

 

인륜(人倫)이 있기에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 군신(君臣)과 부자(父子)의 관계는 인륜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다. 임금이 어질고 신하가 정직하며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께 효도하여야 비로소 집과 나라를 이루어 능히 무궁한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거룩하신 임금님께서 어지시고 효성스럽고 자상하시고 사랑하시며, 현명하시고 지혜로우시니, 만일 어질고 정직한 신하가 보좌하여 정치를 돕는다면, 교화(敎化)와 소통정치로 태평성대를 이루는 것은 해를 보는 것처럼 확실히 바랄 수 있게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신하된 자들은 나라에 보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한낱 봉록과 지위만을 도둑질해 차지하고 거룩하신 임금님의 총명을 가리고 아첨을 일삼아 충성된 선비의 충언을 요망한 말이라 배척하고 정직한 신하를 일러 도적 무리 트집 잡으니, 안으로는 나라를 돕는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백성에게 사납게 구는 관리만 늘어가니 백성들의 마음이 날로 더욱 나쁘게 변해 가고 있다. 집에 들어가서는 삶을 즐길만한 생업이 없고 밖으로는 몸을 보호할 방책이 없다. 혹독하고 포악한 정치는 날로 커져 원망하는 소리가 그치지 아니하여 군신의 의리와 부자의 윤리와 상하의 질서가 드디어 무너져 하나도 남지 않았다.

 

관자(管子)는 "예의와 염치가 펼쳐지지 못하면 나라가 곧 멸망한다"고 말했는데, 지금의 형세는 옛날보다도 더 심하다. 고관대작으로부터 수령방백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위태로움은 생각지 않고 한갓 자기 몸만 살찌우고 제 집을 윤택하게 하는 것만 생각하여, 사람을 뽑아 쓰는 곳을 재물이 생기는 길로 보고 과거 보는 곳을 교역하는 시장터로 만들었다. 허다하게 생기는 뇌물은 나라의 창고에 넣지 않고 도리어 사사로이 개인 창고에 저장한다. 나라에는 부채가 쌓이고 있는데도 이를 갚을 생각은 하지 않고, 교만하고 사치하고 음란하게 놀면서 두려워하거나 꺼려하는 바가 없으니 온 나라가 어육이 되고 만백성은 도탄에 빠지게 되었다. 수령들이 재물을 탐하고 사납게 구는 것은 까닭이 있는 것이다. 이를 어찌해야 만백성이 곤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근본이 허약하면 나라가 쇠잔해지는 것이다. 나라를 보존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는 방책은 생각하지 않고 밖에 호화로운 집을 세워 오직 혼자만 잘 살려고 힘쓰면서 녹봉과 지위만 도둑질하고 있으니, 어찌 이것이 옳은 이치이겠는가.

 

우리들이 비록 초야에 버려진 백성이지만 임금의 땅에서 나는 음식을 먹고 임금이 주신 옷을 입고 있으니, 우리는 앉아서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온 나라가 마음을 같이 하고 모든 백성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여 이제 의기를 들어 나라를 보존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기로 목숨을 내놓고 맹세를 한다. 오늘의 이 광경이 비록 놀라운 일이지만 결코 두려워하거나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각자 그 생업에 충실하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합시다. 나라가 안정되어 아무 걱정이 없고 평안한 세상이 되기를 모두 함께 빕시다. 만백성 모두 다 거룩하신 임금님 덕화를 입게 된다면 천만 다행일 뿐이다.

 

<갑오농민혁명 백산대회 격문>

 

"우리가 의로움를 들어 여기에 이른 것은 그 본래 뜻이 타를 처단하는 데 있지 아니하고 만백성을 도탄 가운데서 건지고 나라를 반석 위에다 두려고 하는 것이다. 안으로는 탐욕스럽고 포학한 관리를 처단하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 무리를 내쫓고자 함이다. 양반과 부호에게 고통 받는 백성들과 수령방백 밑에서 굴욕 받는 하급관리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을 것이니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이 시각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하리라"

 

갑오동학농민혁명군은 1894년 음력 3월 20일 현재의 고창군에 속하는 조선말 무장현 동음치면 구암리 구수마을(당산마을)에서 갑오동학농민혁명의 대의명분이 응집된 포고문인 창의문을 낭독하고 제2차 봉기를 하였다. 창의문(倡義文)은 국난을 당하여 의로움을 외치고 의병을 일으키자는 글이다. 참고로 한양도성의 창의문(彰義門)은 시비지심(是非之心)인 정의를 밝히는 문이라는 뜻이다.

 

3월 25일 갑오농민혁명군은 부안군 백산면 백산성에 이르러 전라도 여러 고을에서 몰려든 농민들과 연합하여 백산대회를 열고 연합부대로서 체계도 갖추고 격문을 발표한다. 창의문이 백성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기 위해 유교적 이념체제 안에서 봉기의 명분을 찾았다면 백산대회의 격문은 봉기에 나서는 농민들의 의지를 적극적이고 진솔하게 밝힌 것이었고, 농민혁명의 출사표(出師表)였다. 참고로 격문이란 여러 사람에게 급이 어떤 사실을 알리거나, 군병을 모집하거나, 적군을 꾸짖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글을 말한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고 하셨는데 현대와 같은 글로벌 시대는 모두가 얽히고 설켜서 피아의 구별이 모호해졌다. 그 만큼 살아남기가 쉬우면서도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다. 과거는 현재의 빛에 비추어졌을 때에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고 현재는 과거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은 갑오동학농민전쟁이 올해로 120년이 되었는데 전국적인 공식기념일과 대표기념관이 없다는 사실이다. 기념일 제정이 장기화하는 것은 지역과 동학단체들의 견해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있을 수 없는 이유라고 한다. ㅠㅠ

 

"때가 올 적엔 천지가 다 내게 협력했건만

운이 다하니 영웅도 어쩔 수 없네.

애민 정의의 길이 내 잘못이 아니었건만

나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아주랴!"(전봉준 장군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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