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기본원리와 자모체계
1. 한글에 대한 이해
한국 고유 문자. 1443년(세종 25년)에 창제되고 46년 반포된 문자 훈민정음(訓民正音)의 현대적 명칭이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훈민정음은 언문(諺文)․언서(諺書)․반절(反切)․암클․아햇글․가갸글․국서(國書)․국문(國文)․조선글 등 여러 명칭으로 불렸다. 특히 언문은 <상말을 적는 상스러운 글자>라는 뜻으로 한자․한문에 대하여 한글을 낮추어 부르는 속칭으로 널리 쓰였다. 그러다가 근대화과정에서 민족의식 각성과 더불어 국문(國文)이라고 부르다가 한글로 통일되었다.
한글이라는 이름은 주시경(周時經)에 의해 만들어져 1913년부터 쓰이기 시작, 27년 한글사에서 펴낸 《한글》 잡지로부터 널리 퍼졌다. 한글이란 말의 뜻은 <한(韓)나라의 글> <큰 글> <세상에서 으뜸가는 글>이란 의미로, 세종대왕이 <정음>이라 부른 정신과 통한다.
한글을 애초에 훈민정음이라고 이름하던 세종(世宗) 창제 28자는 언문(諺文)․언서(諺書)․반절(反切)․암클․아햇글․가갸글․국서(國書)․국문(國文)․조선글 등의 명칭으로 불렸다. 특히 언문이라는 명칭은 세종 당대부터 쓰였는데, 한글이라는 이름이 일반화하기 전까지는 그 이름이 널리 쓰였다.
그러다가 근대화 과정에서 민족의식의 각성과 더불어 국문이라고 주로 부르다가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통일되었는데, 이 이름은 주시경(周時經)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신문관(新文館)에서 발행된 어린이 잡지 《아이들 보이》(1913)의 끝에 횡서(橫書) 제목으로 한글이라 한 것이 있다.
이 한글이라는 명칭이 일반화되기는 조선어학회(한글학회)가 주동이 되어 훈민정음 반포 8주갑(週甲)이 되는 해인 병인년(丙寅年:1926) 음력 9월 29일을 반포기념일로 정하여 가갸날로 이름 지은 뒤, 1928년 가갸날을 한글날로 고쳐 부르게 되면서부터이다. 한글이라는 말 자체의 뜻은 한(韓) 나라의 글 큰글 세상에서 첫째 가는 글이란 뜻이다.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따르면, 한글은 자음(子音) 14자, 모음(母音) 10자, 합계 24자의 자모(字母)로 이루어져 있다. 1자 1음소(一字一音素)에 충실한 음소문자(音素文字)인 이 한글 자모 24자는 훈민정음 28자 가운데서 ․, ᅀ, ᅙ, ᅌ의 네 글자가 제외된 24자인데, 그 중 ․[∧], ᅀ[z], ᅙ[]의 세 글자는 음운변화(音韻變化)의 결과 그 음(音)과 함께 문자로 쓰이지 않게 된 것이며, ᅌ[ŋ]은 현대국어의 받침 ᄋ 속에 음가(音價)는 남아 있으나 글자는 쓰이지 않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ᅌ자는 ᄋ자에 합류된 셈이다.
현행 한글자모의 명칭과 배열순서는 이미 최세진(崔世珍)의 《훈몽자회(訓蒙字會)》(1527)에서 그 대체의 윤곽이 정해졌다.
2. 한글의 원리
훈민정음은 중국음운학 지식을 바탕으로 중세국어를 우선 음절단위로 파악하고, 다시 이를 초성(初聲;첫소리, 닿소리)․중성(中聲;가운뎃소리, 홀소리)․종성(終聲:끝소리, 닿소리)의 3단위로 분석하여 이들을 기준으로 만들었다.
(1) 초성글자
발음기관을 상형대상으로 삼되 조음위치(調音位置)마다 한 음씩을 기본글자로 삼았고, 기본글자 5자 <ᄀᄂᄆᄉᄋ> 이외 나머지 12개 글자들은 <여(소리의 세기)>를 음성자질(音聲資質)로 삼아 기본글자에 획을 더하여가는 방법을 취하였다〔표 1〕. 발음기관을 상형하였다는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 중 제자해에 실린 <어금닛소리 ᄀ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꼴을 본뜨고, 혓소리 ᄂ은 혀가 윗잇몸에 붙는 꼴을 본뜨고, 입술소리 ᄆ은 입모양을 본뜨고, 잇소리 ᄉ은 이의 모양을 본뜨고, 목소리 ᄋ은 목의 모양을 본떴다>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2) 중성글자
상형대상은 전설모음(前舌母音)․중설모음(中舌母音)․후설모음(後舌母音) 계열에서 주로 중모음(中母音) 하나씩을 골라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를 상형해 제자하였고, 나머지 모음들은 이들의 결합으로 제자하였다〔표 2〕. 닿소리글자가 기본을 다섯으로 정하였듯 홀소리글자는 기본을 셋으로 정하여<>는 하늘, <ㅡ>는 땅, <ㅣ>는 사람이 서 있는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그리고 <ㅗ>와 <ㅏ>의 점이 위와 바깥쪽에 있는 것은 이 두 소리가 양(陽)이기 때문이고, <ㅜ>와 <ㅓ>의 점이 아래와 안쪽에 있는 것은 이 두 소리가 음(陰)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3) 종성글자
종성글자는 따로 만들지 않고 초성글자를 그대로 쓰도록 하였다.
3. 자음과 모음의 체계와 명칭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통일안>에 의하면 기본자모는 자음 14자, 모음 10자, 모두 24자로 이루어져 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자음 17자, 모음 11자로 모두 28자였으며, 이 밖에도 병서(竝書)와 연서(連書)가 있어 글자의 수효는 실제 이보다 더 많았다. 그 뒤 창제 당시의 28자 중에서 자음 <, , >과 모음 <>의 4글자가 폐기되어 오늘날의 기본 자모는 24자 <ᄀᄂᄃᄅᄆᄇᄉᄋᄌᄎᄏᄐᄑᄒ/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가 되었다.
현행 한글 자모의 명칭과 배열순서는 <한글맞춤법통일안>에 확정되어 있지만, 이미 1527년(중종 22) 최세진(崔世珍)의 《훈몽자회(訓蒙字會)》 범례(凡例)에 그 대체적인 윤곽이 정해져 있었다. 즉 그는 《훈몽자회》 범례에서 <언문자모속소위반절27자(諺文字母俗所謂反切二十七字)>라는 표제 밑에 <咬>을 제외한 27자를 다음과 같이 분류․배열하였다.
① 초성종성통용 8 자(初聲終聲通用八字) : <ᄀ 其役, ᄂ 尼隱, ᄃ 池末, ᄅ 梨乙, ᄆ 眉音, ᄇ 非邑, ᄉ 時衣, 異凝>
② 초성독용 8 자(初聲獨用八字) : <ᄏ 箕, ᄐ 治, ᄑ 皮, ᄌ 之, ᄎ 齒, 而, ᄋ 伊, ᄒ 屎>
③ 중성독용11자(中聲獨用十一字) : 이에 대하여 그 뒤 1869년 강위(姜瑋)의 《동문자모분해(東文字母分解)》, 1905년 지석영(池錫永)의 《신정국문(新訂國文)》, 1909년 유길준(兪吉濬)의 《대한문전(大韓文典)》, 1916년 김두봉(金枓奉)의 《조선말본》, 1930년 총독부 학무국에서 발행된 《언문철자법》 등에 한글 자모의 명칭과 배열에 관한 시론(試論)이 나와 있었다.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는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정할 때 위의 자음 배열에서 <ᄏ․ᄐ․ᄑ>과 <ᄌ․ᄎ>의 순서를 바꾸고 <>을 없애는 대신 <ᄋ(伊)>을 그 자리에 놓아 배열을 개정하였다. 그리고 <ᄌᄎᄏᄐᄑᄒ> 등은 종성으로 쓴다는 맞춤법 원칙을 정하고, 자음의 된소리는 각자 병서(竝書)하여 나타내었다.
이때 제정된 통일안의 자모와 명칭 및 그 배열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자음 : ᄀ(기역) ᄂ(니은) ᄃ(디귿) ᄅ(리을) ᄆ(미음) ᄇ(비읍) ᄉ(시옷) ᄋ(이응) ᄌ(지읒) ᄎ(치읓) ᄏ(키읔) ᄐ(티읕) ᄑ(피읖) ᄒ(히읗)
② 모음 : ㅏ(ㅏ) ㅑ(ㅑ) ㅓ(ㅓ) ㅕ(ㅕ) ㅗ(ㅗ) ㅛ(ㅛ) ㅜ(ㅜ) ㅠ(ㅠ) ㅡ(ㅡ) ㅣ(ㅣ)
③ 병서(된소리):ᄁ(쌍기역) ᄄ(쌍디귿) ᄈ(쌍비읍) ᄊ(쌍시옷) ᄍ(쌍지읒)
④ 합성모음 : ㅐ(ㅐ) ㅒ(ㅒ) ㅔ(ㅔ) ㅖ(ㅖ) ㅘ (ㅘ) ㅙ(ㅙ) ㅚ(ㅚ) ㅟ(ㅟ) ㅞ(ㅞ) ㅟ(ㅟ) ㅢ(ㅢ) 그리고 1989년 3월 1일부터 시행한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따르면, 사전에 올릴 때 자모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자음:ᄀ ᄁ ᄂ ᄃ ᄄ ᄅ ᄆ ᄇ ᄈ ᄉ ᄊ ᄋ ᄌ ᄍ ᄎ ᄏ ᄐ ᄑ ᄒ
② 모음:ㅏㅐㅑㅒㅓㅔㅕㅖㅗㅘㅙㅚㅛㅜㅝㅞㅟㅠㅡㅢㅣ
4. 한글과 한문의 관계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우리의 고유언어인 한국어가 있었다. 왜 우리말은 있는데 우리글은 없는 걸까? 우리말이 있어도 이 말을 적을 글자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와 인접한 중국에서 한자를 수입을 하여 현재도 한자를 쓰고 있다. 한자는 원래 중국에서 만들어진 중국의 고유문자로 중국이외에도 우리나라, 베트남, 일본, 대만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베트남은 현재 한자를 폐지하고 로마자를 쓰고 있으며 현재 한자를 공용으로 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대만, 일본, 중국에서만 쓰고 있다.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한자를 썼느냐는 알려진 기록이 정확히 없고 철기시대부터 쓰인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시대부터 근대화가 되기까지 한문을 사용하게 되었고 지금도 한자를 쓰고 있다. 우리한국어의 표기문자는 한글과 한자가 있는데 한자는 중국의 접촉으로 말미암아 쓰게 된 것이다.
이후 설총이 이두를 만들어 냈지만 역시 한자가 많이 쓰였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우리의 고유문자인 한글이 탄생했다. 한글을 창제한지 3년후 세종대왕이 한글을 전국에 반포했고 우리민족의 고유문자가 생기게 된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설총이 이두를 창제해낸것과 조선시대에 세종대왕이 1443년에 한글을 만들고 1446년에 전국에 반포한 것이 우리문자생활에 영향을 준 것이다.
차라리 조선시대에 한글을 창제 한 것보단 삼국시대에 한글을 창제하면 더 좋을 텐데 왜 이제와야 한글은 쓰인 것인지 의문이 잘 안간다. 한글은 그 당시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이 붙어졌고 한글을 창제 당시 많은 학자들이 중국과의 관계를 끊는 것이라고 하여 반대했다. 한글은 만든 것은 오랑캐가 하는 짓이 라고 하여 무척 반대했다.
당시 한글은 언문이라 불렀고 천민들밖에 쓰지 않았고 신분이 높은 사람은 한글을 쓰지 않았다. 한글을 무시하고 한글을 언문이라고 한 선비들은 한자를 사용하여 한자가 거의 문자생활을 한다. 한때는 연산군이 왕이 비판하는 글이 한글로 쓰이자 한글교육을 중지하고 한글에 관한 책을 불태웠으며 한글을 탄압하였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한글은 쓰이긴 쓰였다. 대부분이 한자가 많이 쓰였지만 한글로 쓰인 책이 있었다. 이후 근대화에 들어오면서 1894년 갑오개혁때 한글과 한자가 점점 보급되면서 한글은 이때부터 우리글자로 채택되면서 창제된 지 450년 만에 많이 쓰이게 되고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에서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비록 짧은 역사를 가진 한글은 우수성과 과학적인 글로 발전했다. 베트남도 그때까지 문자로 쓰였던 한자를 폐지하고 로마자 채택했고 우리나라도 그때까지 쓰였던 한자를 폐지하고 한글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처럼 동아시아문화권에 속하고 한자문화권에 속하며 중국문화권에 속하는 우리나라는 문자는 한글을 쓰고 중간에 한자도 섞어서 쓰기 때문에 한자를 폐지할 수도 없고 동양문화를 알려면 한자도 배우고 써야 겠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일본도 동아시아문화권이며 한자문화권이며 중국문화권으로 한자를 쓰는 경우가 있어서 일본어에도 히라가나,카타가나를 쓰지만 우리나라처럼 한자를 섞어서 쓰기 때문에 한자가 동아시아문화권,중국문화권,한자문화권에는 필수이고 우리가 동양문화를 알고 중국,대만,일본에서 무역을 하고 교류를 하려면 한자가 배워야 할 것이다.
대만이나 중국은 주로 문자 거의 한자가 고유문자를 차지하지만 베트남에는 주로 로마자가 쓰이고 일본은 주도 히라가나,카타가나가 많이 쓰이며 우리나라는 한글이 많이 쓰인다. 한자는 동양의 에스페란토라고 불리우며 한국어에도 한자어의 비율이 크다. 일본의 가나도 중국의 한자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이두와 베트남의 추놈은 전부다 중국의 한자를 고안하여 만든 글자로 베트남과 우리나라처럼 이두는 후에 한글화했고 추놈은 로마자화했다. 세종대왕도 한자를 잘 몰라서 우리말과 서로 맞지 않는 문자라서 그석을 걱정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만든 글자 한글은 우리말과 서로 맞는 문자를 만들게 되었다.
당시 한자가 거의 문자를 지배하게 되었고 한글은 당시 훈민정음이라 불렀지만 주시경선생님이 한글로 바꾸게 되었다. 동아시아문화권의 영향의 없어서는 안 될 한자는 대만사람들이라 중국사람들은 거의 다 알고 우리나라와 일본은 그 중 절반만 알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글과 한자를 섞어 쓰고 일본은 히라가나. 카타가나와 한자를 섞어서 쓴다. 만약에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제나라의 글도 없는 민족이라고 부름받을 지도 모른다.
5. 훈민정음 창제 의의와 활용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음성언어로 국어를 사용하면서도 문자언어는 양반층의 한문과 중인층의 이두로 대별되는 이원체제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어를 발음대로 표기하는 훈민정음이 새로운 문자로 창제되어 문자생활에 민(民)의 글로서 이른바 언문이 하나 더 추가된 것이다.
훈민정음은 처음부터 백성을 위한 글인 만큼 배우기 어렵지 않았고, 따라서 주로 여성과 일반 백성을 중심으로 보급되었다. 특히 불가의 불경언해, 사대부의 가사와 시조, 한서(漢書)의 주해 및 번역, 전교(傳敎)와 편지 등이 그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순언문 시가와 소설이 유행하면서 훈민정음은 백성과 여성층에 있어 불가결의 글이 되었다. 한편 조선 후기에 일어난 실학운동은 정음문학(正音文學)의 융성과 함께 정음연구를 근세적 문자음운학(文字音韻學)으로 부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실학파의 저술로서 정음에 관한 논술이 빠져서는 안 될 정도로 확산되었고, 그 업적은 어휘집뿐 아니라 방언과 속담의 수집 및 어원 탐구 등 여러 방면에 걸쳤다. 홍명복(洪命福)의 《방언집석(方言集釋)》, 이의봉(李義鳳)의 《고금석림(古今釋林)》 같은 것은 동양어사전인 동시에 기초어휘집으로서 가치있으며, 특히 유희(柳僖)의 《물명고(物名考)》에는 주석 곳곳에 1600여 개의 희귀한 우리말 어휘 기록이 전한다.
갑오개혁이 추진된 1894년 11월 칙령 제 1 호 공문식(公文式)을 공포하여 종전의 한문 대신 국문을 쓰도록 함으로써, 훈민정음이 창제된 지 450년 만에 언문이 공식적인 국자(國字)의 자격을 얻게 되었다. 한글은 독창성과 기호 배합의 효율성면에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 근거로는 모음과 자음의 구별이 쉽고, 28개 자모가 수직-수평의 조합으로 반듯한 사각형을 이루면서 질서정연하게 배열된 점을 들고 있다. 특히 자음이 입술, 입 및 혀의 위치를 확실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한글의 과학성이 더욱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 ‘훈민정음연구’ 강신항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3
- ‘훈민정음과 문자론’ 전정례 김형주 역락 2002
- ‘한글의 비밀: 한글을 위한 명상’ 김항만 세인 2002
- ‘(한글 정서법의) 실제와 원리’ 최병선 경진문화사 2003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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