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옥이
이 원 수
나는 나 혼자 보며 즐기는 그림책을 가지고 있다. 이 그림책은 종이 위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 아니고 내 마음의 눈으로 보는 그림들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책속의 한 장 한 장의 그림은 나의 소망과 그리움과 아름다움들로 가득 차 있어서 내게는 영원히 버릴 수 없는 것들이다.
나 혼자만이 보던 그림책을 여러분 앞에 펼쳐 보이는 것은 나와 같이 보아 주는 사람들 중에서 나와 더 친해지고 가까워지는 사람이 생길 것 같아서다. 그런 친구가 갖고 싶다.....
어느 날, 나는 싸리나무 울타리에 가서 보랏빛 싸리꽃을 보다가 그 자디잔 싸리�의 모습에서 내 아기를 본 듯하여 스스로 놀랐다. 오랫동안 꿈에도 나타나지 않던 내 딸 상옥이는 수천 수만의 꽃이 되어 피어 있구나. 모두 헤헤 웃는 얼굴로-
아무도 없는 외로운 섬엔 바람만 불고 있었다.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과 형제들과 다 같이 사는 나는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많은 사람과 같이 살아야지. 같이 잘 살기 위하여 노력해야지...
초여름, 밤 깊어 보리밭 길에 나와 서 있었다. 서쪽 하늘에 조각달이 기울고 있었다. 보리 냄새가 밤 공기에 배어 선들바람에 풋내가 났다. 그런데 그 밤의 안개 서린 산에서 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이 밤중에 잠자지 않고 우는 새는 무슨 슬픔이라도 있단 말인가. 나는 그 새소리에 왈칵 딸 생각이 났다....
뜰에 서 있는 라일락나무가 온통 연보랏빛 꽃더미가 됐다. 뜰 안에 그 향기가 가득히 괴어서 바람에 일렁인다. 향기 속에 또 그 아름다운 꽃더미 속에 나는 희수를 본다. 그 라일락 나무는 봄이 오면 그야말로 꽃무더기를 이루어 달고도 새큼한 향기를 온 집안에 뿌리고, 그러고도 남아 담장 밖으로 넘쳐 흘러 보낸다...
얼음 같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람은 마을 뒤 낙엽송 숲에서 휘익휘익 불다가는 텅 빈 들판으로 몰려가서, 거기서 하늘로 솟아오르기도 하고 남쪽 먼 곳으로 열차처럼 달려가기도 했다.하늘은 연푸른 빛깔로 깨끗하기만 했다. 유리같이 맑으면서 얼음장같이 싸늘했다. 하늘에는 남쪽으로 해가 번쩍이고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이리 뛰고 저리 달리고 할 뿐 하늘에는 정말 티끌 하나도 없었다. 하늘은 차디찬 얼음만 같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방안에 들어앉아 있는지 동네는 조용하기만 했다. 얼음장 같은 하늘에, 티끌하나도 없는 하늘에 저 북쪽 산등을 넘어 까만 좁쌀 같은 것들이 나타났다. 갈가마귀였다...
한밤중에 어쩌다 잠이 깨면 세상이 조용한 걸 알게 됩니다. 그 조용함 속에서 낮에는 들리지 않던 가느다란 소리, 이상한 소리도 들립니다. 어느 날 희야는 한밤중에 잠이 깨었습니다. 방안은 캄캄하고 온 세상이 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이 때 어디서 가느다란 명주실 가닥같은 작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사랑을 바라는 마음은 죽지 않아요. 원한이 많은 마음도 죽지 않아요. 착한 마음도 죽지 않아요."
산비탈, 풀이 무성한 곳에 줄기가 길게 자란 쑥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가을도 늦어가서 쑥은 잎이 반 넘게 시들었습니다. 잎은 이미 시들었지만 줄기 아래 땅속에 있는 뿌리는 시들지도 병들지도 않았습니다. 그 쑥의 뿌리는 산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노래하듯 부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노랫소리가 너무 처량하게 들렸기 때문에 산을 내리는 바람들이 저도 모르게 그 노래를 흉내내어 부르고 다녔습니다..
담장 안에 코스모스가 수북히 서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가느다란 잎이 흔들리고, 가지 끝에 핀 꽃송이와 봉오리들이 살레살레 몸짓을 했다. 코스모스는 요새 한창 어우러져 피어 유쾌한 기분이었다. 하늘은 옥빛으로 맑고 바람은 물에 씻은 듯이 싸늘했다. 가을이다. 누구나 맑은 하늘을 쳐다보고 맘속으로 좋아하였다. 무언지 모르게 좋았다. 코스모스는 그 커다란 키로 그 맑은 바람에 제 몸을 맡겨 흔들리고 있었다. 코스모스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인제 얼마 안 가서 나는 죽는다. 기다리던 행복이 오자마자 나는 죽는다. 봄부터 여름, 가을을 지나며 꽃피는 날이 죽음의 전날이 되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죽음의 날을 기다린 것이 아닌가!" 슬픔에 잠겨 있던 코스모스는 귀뜨라미의 말과 노래를 들으며 다시 생각했다. "내가 죽는다고 해도 나의 생명은 더 많은 생명으로 더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가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생각한 슬픔은 이 사실을 생각하니 오히려 기쁨으로 바뀌는 것도 같구나!"
"귀뜨라미야, 너는 목소리가 고우니까 동무를 부르는 노래를 잘 부른다마는 나는 어디 목소리가 고와야 노래를 하지 않겠니?"
"코스모스 아가씨도 참, 별말씀을 다하시네요. 아가씨는 노래보다 더 좋은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지 않았어요? 그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바람이 와서 웃음을 흩어주고, 나비가 와서 입맞춰 주지 않아요? 그러면 되는 거지요. 나같은 귀뜨라미는 어디 모양이 예쁩니까? 그러니까 목소리 하나라도 좋은 걸 가진 거죠. 세상엔 좋은 것도 고루 가져야 하는 거여요. 그러니까 기쁨과 슬픔도 갖추어 가지게 되는 법이라오. 제가 노래를 부를테니 아가씨는 그 긴 허리와 미끈한 팔로 춤을 추시면 그보다 더 좋은 맵시는 없을 거여요."
이원수 지음 | 창작과비평사 | 1977.02 | 아동
충주 이학사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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