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샘

애덤스미스 경제학의 탄생 / 제임스 버컨

가랑비01 2009. 2. 23. 23:38

애덤 스미스 경제학의 탄생

                                제임스 버컨

 

모든 경제학은 애덤스미스로 통한다!

국부론으로 경제학의 새로운 역사를 쓴 애덤 스미스의 감춰졌던 삶과 사상.

국제무역의 이론적 기초를 만든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

그의 경제 이론은 지금껏 '자유방임주의. 작은 정부. 국부론' 등에 가려져

부자를 위한 경제학으로 인식되었을 뿐이지만

사실은 부자의 탐욕을 경계하고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복지를 중시하였다.

 

애덤 스미스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보며 "지독할 정도로 틀에 박힌 삶이었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애덤 스미스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고 종교적 자유도 없는 가난한 나라였던 스코틀랜드 옛 수도를 마주 보고 있는 작은 항구에서 1723년 초여름에 유복자로 태어났다. 유아 시절에 그는 병약하고 힘이 없었다고 전해 진다.

 

 그는 혼자 있기를 좋아했고, 결혼하지 않은 채 어머니와 같이 살았다. 글래스코대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스승들을  만났지만 옥스퍼드대에서는 가까운 친구도 좋아하는 교수도 없었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근대학문은 가난한 대학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스미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우울증의 징후는 옥스퍼드에서 처음 나타났다. 스미스는 원체 정신이 없는 사람인데다 세속의 일에는 서투른 부분이 많았고 말재간도 없어서 지체 높으신 분들의 환심을 사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기작가 '존 레이'는 전한다. 스미스의 표현에 따르면, '사는 재미가 없고, 한 가지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건강도 나빠졌다." 스미스의 우울증은 갈수록 심해져서 스스로도 잉글랜드에 갔다가 그 곳에서 죽는 것은 아닌지 걱정할 정도였다. 공상에 잠기거나 장광설을 늘어놓는 스미스의 버릇도 나아지지 않았다. 1773년 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바로 자신이 죽을 것을 대비하여 야심적으로 기획하고 있던 대작을 출판하기에는 너무 치기 어린 작품이라고 걱정하여 집필하던 단편적 논문들의 일부 원고를 검토해 달라고 '흄'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스미스는 출세의 도구로서 언어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보다는 마음의 작용 원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창으로서의 언어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언어가 인간만의 독특한 기능이라면, 그 언어는 법이나 상업이나 돈처럼 인간이 만든 위대한 창작품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언어와 이들 인간 창작물들 사이에는 어떤 유기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고 연구하였다. 18세기는 터무니없는 궤변과 난해한 학문과 예술, 여러 형태의 정치적 기구, 통치원리와 혈족관계 등 기원이나 진화과정이 사라진 거창하기만 한 정신적 가공물이 난무하고 있었다. 이들은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실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끝이 없는 욕망은 세계를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구한다. 그런 욕망은 역사를 관통하고 역사를 명료하게 만드는 진정한 힘이다.

 

 스미스의 걸작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은 모두 잘 알려진 원리인 동감과 분업을 바탕으로 독특한 이론을 전개하고 그런 원리들은 하위의 사회적, 상업적 현상을 마치 군대를 움직이는 진법처럼 전개한다. 스미스의 분업은 직업의 자유가 주어지고 그 직업에 안전하다고 느끼고, 또 실재로 안전하다면 사람은 적성과 숙련도에 따라 서로 다른 직종에 배치되어 우수한 생산품을 좀 더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미스는 분업의 결과로 서로 다른 적성이 생긴다고 보았다. 

 

                    출처: 애덤 스미스 경제학의 탄생  / 제임스 버컨 / 이경남 역 /청림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