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은 헌책이다
최종규
함께살기 최종규의 헌책방 나들이
새책은 세상에 수없이 많으나 헌책은 세상에 하나뿐입니다. 헌책은 '어떤 책 하나를 읽고 만지고 다루고 즐긴 사람들 손길과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인 한편 '우리 문화사와 생활사를 엿볼 수 있도록 이끄는 책'이기도 합니다.
출판 문화와 사회 의식구조 모두에서 헌책을 바라보는 눈길과 생각을 달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책을 그냥 '폐기물'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쓸 수 있는 문화 유산'으로 생각하고, '분리수거로 버리는 쓰레기'가 아니라 헌책방을 돌고돌며 싼값으로 여러 사람들이 즐겨읽을 수 있도록 내놓을 수 있는 '사람 손을 타는 책'으로 여겨야 합니다. 학교나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해서 버릴 때에도 폐기해서 버리거나 폐휴지로 버리지 말고, 헌책방에 내놓는다면 '맞춤법이 옛날 것이고 낡아떨어진 책'이라고 해도 그 책 하나를 소중한 자료로 쓸 사람들이 많습니다.
'버려진 책'이 헌책방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다시 읽을 만한 책'이 헌책방에 들어옵니다. 책이라는 흐름에서 맨 위에 윗물인 새책방이 있다면 흘러흘러 맨 아래에는 아랫물인 헌책방이 있습니다. 이 곳에서 값어치를 매기고 새롭게 빛을 보도록 되살리어 바다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책을 갈무리합니다. 하늘에서 내린 빗물이 말라서 하늘로 올라가 다시 빗물로 내려오는 흐름고리라고도 말할 수 있는 책이 헌책방 헌책입니다. 헌책방에서 자신이 원하는 소중한 보물을 찾는 일은 '고물'로 들어온 책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됩니다.
헌책이란 '누군가가 이미 보거나 읽어서 낡아진 책 가운데 상품으로 사고팔 수 있는 책이거나, 사람 손을 거치지 않았지만 새책방에서는 더는 팔 수 없는 책이거나, 비매품이나 자비출판물 가운데 책에 붙는 값을 안 따지고 요즘 시세에 맞춰 파는 책으로 헌책방에 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헌책은 '어떤 책이 처음 나왔을 때의 옛모습과 옛느낌을 지금 그대로 간직한 자취'입니다. 헌책은 '어느 곳을 가더라도 다 다른 모습으로 만나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헌책방에서 우리들 책손에게 책을 사는 잣대는 '얼마나 다른 책손들에게 팔릴만한 책이냐'입니다. 반품이 없이 파는 헌책방 헌책이기에 엉뚱하거나 안 읽힐만한 책은 한 권도 안 갖춥니다.
새로운 생명을 얻고 태어나려는 헌책들로 가득한 헌책방은 늘 우리를 기다립니다. 우리가 기쁘고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와서 이런저런 책을 고르며 뿌듯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책이란 언제나 그 책을 제대로 알아보고 읽고 살피며 나눌 수 있는 사람 손에 가야 제대로 빛을 봅니다. 좋는 책은 좋은 책을 엮어 내고 지어 내려는 사람 땀과 품과 시간 위에 그 책을 알아보고 사서 보는 우리들이 꼭 필요합니다. '팔기 아까운 좋은책들'을 품고 있는 즐거움을 느끼다가 참말로 이 책을 두고 훌륭한 연구를 할 사람에게 내어 주는 기쁨을 갖는 헌책방은 찾아오는 많은 손님들에게 '잘 팔릴만한 좋은 책'으로 믿음직한 미래를 밝혀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날마다 헌책방을 찾아가는 동안 만난 책 때문에 삶을 배우고 지식을 얻고 슬기를 깨우쳤습니다. 한 권 두 권 만난 헌책들은 제 생각과 마음을 살찌웠고, 저를 사람답게 크도록 이끌었습니다. 모든 것이 도움이 되었고, 그 동안 사서 집에 갖춘 책들도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을 알려주었을 뿐 아니라, 제대로 몰랐던 것을 깨우쳤고, 제가 살아가고 일하고 노는 모든 길을 텄습니다. 책 사이에서 부대끼고 책 사이에서 배웠습니다.
우리는 헌책방에서 느낍니다. 책을 만나고 책방 임자를 만나면서 그 책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하며 사람 하나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느낍니다.누군가 이런 책을 만들었기에, 누군가 이책을 사 보았기에, 주워 모았던 사람이 있었기에, 헌책방으로 내 놓은 사람이 있었기에 고맙게 책 한 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언제나 마주치는 사람 가운데 내게 소중하고 더 반가운 사람 하나를 만나는 즐거움으로 살 듯, 세상 가득한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내게 더 소중하고 반가운 책 하나를 만나려고 책방 나들이를 합니다.
출처: 모든 책은 헌책이다 / 최종규 / 그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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