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이야기

나의 절친한 친구와의 인연

가랑비01 2011. 9. 3. 12:28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한다.

사람은 왜 생각할까?

인생이 즐겁거나 바뻐도 생각할 여유가 있을까?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고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퍼득 정신을 차리는 것인가.

긴긴 한여름의 뙤약볕과 폭풍우를 견디고 마지막 과실을 맺으려는 오곡을 바라보며

숨고르기의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딴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일까?

 

비온 뒤의 하늘은 참 아름답고 곱다.

맑은 하늘에 무지개가 뜨고 뭉게구름이 흘러 가는 모습은 우리를 편안하게 한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사람은 외로워 진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사람은 외로우면 사색을 하고 친구를 찾고 책을 찾는다.

 

더위가 마지막 고지를 향해 달려갈 때

아침저녁 살랑살랑 산들 바람이 불어오면

 나를 꼭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가 나를 찾아와 나와 함께 한 지가 벌써 십여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이 친구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줄 알고 무척 놀랐다.

그리고 이 친구외의 인연을 더듬어 보았다.

이 친구와의 인연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아득한 초등학교 시절에도 질긴 인연의 끈이 연결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아니 학창시절을 통하여 나는 우등생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모범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큰 성공과는 거리가 멀고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현재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건실하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편이다. 

학창시절 큰 사유가 없으면 거의 개근하였는데 국민학교 시절에 정근을 한 경우가 세 번 있었다.

이 세 번은 모두 조퇴를 하였였고 이 조퇴가 바로 내가 지금 이야기하려는 친구와 관계가 있다. 

 

하늘이 맑고 고운 어느 가을 날 아침이었다.

저 멀리 월출산을 바라보며 

십여리 이상 거리에 있는 읍내 국민학교를 향해

책보를 둘러매고 열심히 학교를 가고 있는 중이었다.

 

안개가 자욱히 산자락에 깔리고

벼가 누렇게 고개를 숙이려고 하는 논길을 가다가

 나는 논두렁에 누었다.

도저히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머리가 띵하고 온몸이 나른하며 피곤해지며

콧물이 비오듯 쏟아지고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눈이 간지럽고

목이 붓고 눈 앞이 캄캄해졌다.

 

학교에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일어나 걸어가다 누었다 하며 학교에 늦게 도착하여

바로 담임 선생님에게 이야기 하고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기억은 내가 이야기 하는 바로 이 친구에 대한 새로운 기억이다.

 

나는 아주 건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보통 시골아이들처럼 학교에서 돌아오면

소꼴을 베고 나무를 하고 농삿일을 돕고 뚸어 놀던 건강한 보통아이었다.

나는 일년에 거의 감기 한 번 안 걸리는 외유내강의 체질이지만 일년에 딱 한번 고생을 한다.

바로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가울 초입에 이 친구가 찾아오는 것이었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이 친구가 꼭 한 번씩 찾아와 나와 함께 하였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 몸의 내성이 약해 질 무렵인 10여년 전부터는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내가 이 친구의 정체를 이 무렵부터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친구를 떨어뜨리기 위해 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해 보았다.

약탕기를 사다가 이 친구를 퇴출시키는데 좋다는 약재를 구해다 끓여 먹어 보기도 하고

아픔을 무릅쓰고 직접 수지침으로 이 곳 저 곳 벌집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음양탕이라는 신비의 물을 장복해 보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이 친구에 대한 비폭력 저항을 계속해 왔다... 

 

나의 형제가 칠형제인데 대부분 형제에게도 이 친구가 찾아 오는 걸 보면

유전과도 연관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요즈음에는 어디를 가나 이  친구와 친구가 되어 있는 많은 사람을 만난다.

친구의 친구는 나의 친구라고 한다.

이 친구와 친구가 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반가운 나의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즐겁고 반갑고 안쓰럽고 친근감이 든다.

이 친구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친구 이야기를 하면 금방 수십년지기가 된다.

 

태양이 뜨겁게 내리치는 폭염이 한창일 때

나는 이 친구를 기다리기 시작한다.

이 번 가을에는 이 친구가 언제 어떤 형태로 불쑥 찾아 올련지

주위 사람들에게 이 친구 이야기를 하며 기다렸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며 고독의 계절인데

나의 가을은 이 친구와 함께 하는 한 외롭지 않다.

 

드디어 친구가 왔다.

에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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