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이야기

동전을 먹은 세탁기

가랑비01 2005. 8. 23. 23:32

 

<동전을 먹은 세탁기>

 

드르륵 드르륵,
덜컹덜컹 덜컹덜컹 끼끼끽 끼끼끽,
재주네집 세탁기가 열심히 빨래를 하고 있습니다.

 

드르륵 드르륵 덜컹덜컹 꽝꽝 덜컹덜컹 펑펑,
세탁기가 갑자기 크게 요동치더니 멈춰 섰습니다.

 

"재주야, 어쩜 좋으니 세탁기가 고장 났나봐."
"엄마, 무슨 일이에요? 에이,세탁기가 또 안 돌아 가네요?"
잠시 후 드르렁 드르렁 덜컹거리며 세탁기가 다시 하던 일을 계속 합니다.

 

"엄마, 세탁기가 다시 작동해요. 아마도 세탁기 안에 동전이 가득 들어서 무거워 지니까 힘이 들어서 쉬었다가 일을 하는가 봐요"
"맞어, 그런 것 같구나. 세탁기 바닥을 보면 동전이 엄청 많이 쌓여서 드르륵 드르륵 동전 소리가 나고 구멍 사이로 동전이 엄청 많이 보이더구나."


 말을 하는 중에 세탁기가 아주 멈추었습니다.

"엄마, 안 되겠어요. 서비스를 받아야 하겠어요."
"응, 그래야 하겠는데 서비스를 받으려면 서비스 비용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순진이 엄마랑 환장이 엄마의 말에 의하면 동전은 애프터 서비스 기사가 가지고 가는 것이 예의로 되어 있다는구나. 동전이 꽤 많은데 기사를 주기에는 너무 아깝잖어. 저 정도 동전이면 우리 식구 여름 피서 가는데 도움이 될텐데.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 오시려면 아직도 한 달은 있어야 하는데..."

 

"그럼 엄마, 내가 한 번 동전을 꺼내 볼까요?"
"뭐라구? 너가 하기에는 쉽지 않을텐데?"
"나만 믿으세요. 저번에도 부엌 싱크대 수도 꼭지를 감쪽같이 교체해 드렸잖아요?  그때도 엄마는 걱정 하셨지요. 언젠가 아빠가 화장실 샤워기 바꾸는 것을 유심히 보았는데 그대로 했더니 잘 되었잖아요. 이번에도 한 번 해 볼께요."

 

 일주일 전에 재주네 부엌에 있는 싱크대 수도 꼭지의 바킹이 닳아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재주가 자전거를 타고 멀리 가서 새 수도꼭지를 사와 교체했는데, 아주 물이 잘 나오고 물이 새지 않아서 수도를 잘 사용하고 있었답니다.

 

 재주는 엄마에게 세탁기 바닥 뚜껑을 열기로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세탁기 바닥 뚜껑을 열려면 십자 드라이버와 육각 드라이버가 있어야 했습니다. 철물점에 갔더니 육각 드라이버는 없었습니다. 철물점에서는 이 동네에는 육각 드라이버가 없고 시내에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재주는 몇 군데의 철물점에 들렸다가 어렸을 때 자주 다니던 '어린이나라'에 찾아 갔습니다.

 

"안녕하세요?"
"어! 어서와라. 오랜만이구나."


"네."
"그래 많이 컸구나. 이제 길에서 보면 인사하기 전에는 잘 몰라 보겠다. 동생 재민이가 오 학년이고 너가 육 학년이지? 재주야, 너 다섯 여섯 살 때 기억나니? 아빠는 지방 출장을 자주 가시고 엄마는 야근을 자주 하셔서 집에 아무도 안 계셨지. 너희 형제 둘이서 집을 보다가 심심하면 저녁 늦게 너가 동생 손잡고 사이좋게 매장에 데리고 와서 아저씨가 문 닫을 때까지 있다가 가곤 했었지. 그리고 그 해 겨울에 아이엠에프 때문에 온 나라가 어수선 했었지. 너 그 해 크리스마스 기억하니?"

 

"잘 기억이 안 나요."
"그 땐 정말 어렸을 때니까 그럴거야. 그 해 크리스마스에는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함박눈이 쌓이고 쌓여서 온 천지가 눈 속에 파 묻혔지. 저녁 늦게까지 함박눈이 계속 펑펑 쏟아졌었다. 그리고 밤이 깊어 갈수록 바람이 심해지면서 날씨가 무척 추워졌었지. 그런데 아마 밤 열시가 다 되어서 너가 동생 재민이 하고 그 눈보라 치는 추운 밤에 나타났었지."

 

"아, 이제 기억이 나요. 그 때 제가 여섯 살이었지요. 아빠가 지방에서 올라 오시면서 전화로 '어린이나라'에서 선물을 사 주시겠다고 하셔서 무조건 바로 나가서 기다렸지요."
"밤이 깊어 갈수록 추위는 점점 심해져서 인적이 드물어지기 시작해었지. 너희들에게 매장 안에서 기다리라고 해도 한사코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아빠를 기다렸었지. 너희들이 매장 안에서 기다렸으면 아저씨도 덜 안타까웠을텐데..."

 

"무척 추웠지만 오랜만에 뵙게 되는 아버지를 보는 것이 즐거웠고 또 선물도 기다렸어요."
"거의 새벽 한 시가 다 되어서 너희 아빠가 오셨지. 멀리서 너의 아빠가 너희들에게 두 손을 번쩍 들으시고 '메리 크리스마스'를 큰 소리로 외치셨지. 그리고 달려와 어린 아들들을   껴안더구나. 한밤중까지 기다린 아이들을 따뜻하게 격려하고 포옹하는 모습에 나의 마음도 뭉클해지고 느낀 점이 많았다. 그 때 너희 아빠가 사 주신 선물이 무었이었는지 기억나니?"

 

"네, 아빠는 스케치북을 선물하셨지요."
"맞아, 그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크고 값비싼 산타 선물을 사고 포장하고 있었지만 너희 아버지는 담담히 스케치북을 고르셨다. 이제 너도 알만큼 알 나이니까 이야기 하는데 너희 아버지는 약간은 미안하시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포장을 부탁하셨지. 너희도 알다시피 내가 이윤에 밝은 장사꾼이 못 되잖아? 나도 좀 감성적인 경향이 있지. 나는 그 순간 너희 아버지의 마음이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기꺼이 예쁘게 포장해 드렸다. 내가 십 오년 가까이 장사를 하면서 가장 감동적인 선물이었지. 양쪽에서 아빠 손 잡고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너희 가족을 멀어질 때까지 지켜 보았다. 아참, 그런데  너 왜 왔니?"

 

"우리 집 세탁기에 동전이 가득차서 빼야 하는데 육각 나사를 풀 수가 없어서요. 동네에는 육각 드라이버를 파는데가 없어요."
"응, 세탁기 바닥에 있는 십자 나사와 육각 나사는 풀기가 쉽지 않고 비전문가가 빼기는 만만치 않을 텐데."


"네, 그래도 한 번 해 볼려구요. 조심스럽게 시도해 보고 안되면 서비스를 부를려고요."
"응, 공구상은 여기에서 조금 멀리 있다. 우이천을 죽 내려가다 보면 옛날 한국전력 있었던 사거리에 공구상이 있다. 육각 드라이버의 규격을 정확히 알아야 할텐데."
"아저씨, 고맙습니다."

 

 재주는 자전거를 타고 공구상에 갔습니다. 육각을 달라고 했더니 처음에 육각 렌치를 주어서 아니라고 하고 대충 사이즈의 육각 드라이버를 사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세탁기 육각 나사에 대어보니 드라이버의 크기가 약간 커서 나사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규격을 정확히 재어 가지 않은 걸 후회하면서 규격을 잴려고 하는데 나사가 틈 사이에 있어서 크기를 아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재주는 볼펜  위쪽으로 크기를 어림잡아 크기를  추측했습니다.

 

 며칠동안 햇볕이 쨍쨍 내리째는 무더운 여름 날씨였습니다. 재주는 땀을 뻘뻘 흘리며 공구상에 다시 갔습니다. 공구상에서는 규격을 정확히 모르면 맞추기가 어렵다고 난처해 했습니다. 재주는 적당히 크기를 재어서 전보다 바로 위 사이즈의 드라이버를 사왔습니다. 집에 돌아 온 재주는 나사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재주는 세탁기 통이 회전하기 때문에 나사가 반대로 조여졌을 경우를 생각해서 조심스럽게 왼쪽과 오른 족으로 돌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침착하게 왼쪽으로 조금씩 힘을 주어서 천천히 나사를 풀었습니다. 나사들을 골고루 조금씩 풀었습니다.


"영차, 영차, 어영차!"
 조심스럽게 힘을 주면서 세 개의 나사를 골고루 풀어 나갔습니다.

 

 어느 정도 나사가 풀린 듯하자 재주는 세탁기 바닥 가운데를 흔들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사를 뽑아 보았습니다. 나사는 왼쪽과 오른쪽으로 돌아가기만 하고 풀어도 뽑아지지가 않았습니다. 뚜껑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재주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서비스를 부를 것을 괜히 만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지다 만 것은 서비스도 안 해 준다는 기억이 떠 올랐습니다. 재주는 나사를 다시 오른쪽으로 돌려 조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사는 일정하게 돌아가기만 할뿐 조여지지 않았습니다. 나사는 풀리지도 않고 조여지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세탁기가 오래 되어서 나사들이 녹이 슬어서 나사 구멍에 문제가 생긴 듯했습니다. 재주는 온몸을 땀으로 목욕을 하며 끙끙 댔습니다.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재주는 아빠에게 손전화를 했습니다. 재주는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아빠는 걱정하지 말고 서비스에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재주 엄마가 서비스 센타에 전화를 하시니 여름 연휴 기간 이여서 서비스가 많이 밀려 있어서 방문하는데 며칠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오늘이 수요일이니 월요일 오후 4시 쯤에야 가능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평소 때에는 그리 눈에 뜨이지 않았던 세탁기가 고장이 나니 하루 종일 세탁기만 생각나고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재주의 엄마는 빨래를 손으로 하나하나 빨으셨습니다. 무더운 여름이라 땀을 많이 흘러서 빨래감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냥 아프터 서비스를 맡길 걸 하는 생각이 하루종일 재주의 마음을 무겁게 짖누르며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재주는 공책을 사러 '어린이나라'에 갔습니다. 아저씨가 재주를 보고 반가워 하시며 물어 보았습니다.
"그래, 세탁기는 어떻게 되었니?"
"제가 나사를 풀었는데 나사가 오른쪽과 왼쪽으로 돌면서 풀리지도 않고 잠기지도 않고 바닥 뚜껑이 빠지지도 않아요.애프터 서비스는 밀려서 며칠 있어야 한대요, 빨래가 많은데.. 아주 고장이 나서 새로 사야 할지도 몰르겠어요."
"그래, 내가 한 번 가서 봐 볼까?  잠깐 기다려 동심이 엄마가 오는대로 같이 가보자."

 

 재주와 '어린이나라' 아저씨는 재주네 집에 도착했습니다. 아저씨가 세탁기 나사를 돌려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재주야, 이 육각 드라이버는 10인치이고 세탁기 나사는 9인치 인 듯하다. 드라이버가 약간 헛도는 듯하다. 내가 동네 아는 사람들에게 연장을 구해 볼께."


 아저씨는 맞는 연장을 구하러 아는 사람들을 찾아 갔는데 없었습니다. 아는 카센타에서는 카센타 아저씨가 외출하셔서 연장을 함부러 빌려 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따르르기'와 '복스알 세트'를 구하신 아저씨가 집에 오셔서 나사를 돌려 보았습니다. 나사는 더 이상 진전이 없었습니다.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세탁기 속에 있는 암나사를 지지해주는 풀라스틱이 약간 뭉그러 졌던가 나사 구멍이 녹이 슬어서 뭉그러진 것 같다. 크기가 맞지 않은 연장으로 돌리다보니 흔들리면서 나사가 바로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이것을 뽑으려면 세탁기 옆과 아래를 풀어서 뿁아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서비스를 기다리기로 하자. 크게 고장 나지는 않은 듯하니 걱정 말거라. 참, 너 요즈음 공부 잘 한다고 소문 났던데?"
"네?"

 

"학교 입학했을 때는 학교 생활에 적응을 하는데 약간 고생했다던데..."
"에, 맞아요. 아저씨도 알다시피 부모님이 맞벌이 하셔서 집에 거의 안 계실 때가 많았지요.학교에 처음 갔는데 답답하고 선생님 말씀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이생각저생각이 꼬리를 무는 거예요. 어떨 땐 멍하니 창문을 쳐다보고 있다가 선생님께 혼나기도 했어요. 또 준비물이나 숙제를 거의 안 해 가지고 가는 날은 불안스럽고 수업 시간이 빨리 갔으면 싶고 재미가 없었어요. 어쩌다 엄마가 학교에 가면 선생님께서 엄마를 붙잡고 하소연하기 바빴답니다. 학년 초에 수업이 시작되면 제가 선생님의 눈에 바로 들어오는 아이였답니다. 선생들 께서는 주의력 결핍이니 과잉 뭐라고...."

 

"과잉 행동 장애?"
"네, '과잉 행동 장애'라고 했어요. 빨리 전문가를 찾아가 심리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엄마를 만날 때마다 상담을 받았느냐고 물어 보셨답니다. 그 때마다 어머니께서 시간이 없으시고 돈이 없으셔서, 선생님들께  유명 신경정신과에 상담을 갔었는데 박사님이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했다고 얼버무리셨지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네가 이번에 '전국 과학 경진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탔고, 과학 영재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하던데?"
"네, 그런 일이 있었지요."

 

"나는 과학 영재하면 특별히 대단한 천재들인줄 알았는데 네가 과학 영재로 뿁혔다는 말을 듣고 놀라고 기뻤다. 과학 영재가 될려면 아주 비싼 과학 학원을 특별히 다녀야 하고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하던데. 어떻게 해서 과학 영재가 될 수 있었니?" 

 

"저희 집 형편이 어려운 것은 아저씨도 잘 아시쟎아요. 학원에 갈 돈이 없어서 거의 집에 있었지요. 그리고 토요일 날은 특히 갈 곳이 마땅하지 않아서 동샐과 노는 것이 퍽 지루했지요. 어느 날 완구 조립회사인 '(주)한국 우주 과학 나라'에서 무료로 과학 교실을 토요일에 연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가서 동생과 함께 다녔어요. 토요일에 하는 과학 교실이 너무 재미 있었어요. 그 회사에는 안 팔려서 반품되어 온 조립 장난감이 엄청 많았어요. 동생과 나는 그 장난감들을 조립하고 놀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너무너무 토요일이 재미있고 기다려졌어요 .3년 동안 꾸준히 과학 교실을 다녔는데 과학 교실 선생님이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과학 영재 경시 대회'에 응시해 보라고 해서 아무 생각없이 갔었어요. 그리고 전국 대회에 나가라고 해서 나갔어요."

 

"그랬었구나. 세상 일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구나. 정말 대단하다. 너에게 그런 숨겨진 재능과 끈기가 있었다니."
"저도 깜짝 놀랐어요. 제가 잘 할 줄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모든 것이 무료하고 재미가 없었어요. 이제 저는 무엇이든지 조립하고 만들 때면 너무 즐겁고 시간가는 줄도 몰라요. 그리고 하나씩 만들 때마다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고 하늘을 날아갈 것같은 기쁨을 가져요. 육학년 올라와서는 공부도 재미가 있어서 성적도 많이 오르고 선생님 칭찬을 많이 들어요."

 

"그래, 아저씨도 기쁘다. 너가 여섯 살 때 동생 손을 꼭 잡고 밤에 우리 어린이나라에 올 때마다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했는데 이제 모든 일을 스스로 자신있게 하는 훌륭한 어린이로 성장하고 있구나. 부모님도 고생하시지만 든든하시겠다."
"글쎄요. 이번엔 너무 성급히 대들다가 세탁기를 아무래도 망가뜨린 것 같아요. 납땜이나 조립, 분해는 자신 있는데...."

 

"누구나 그럴 수도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서비스 기사에게 보이고 문제가 발생하면 그 때 걱정을 시작하기로 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열심히 해라."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재주네 엄마는 빨래를 틈틈이 손으로 하셨습니다. 토요일 오후 4시에 집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서비스 센터 기사 아저씨였습니다. 서둘러 여기저기 수리를 하다보니 시간이 남아서 들리겠다고 했습니다.

 

 잠시 후, 아저씨는 조그만 연장 가방을 들고 오셨습니다. 아저씨에게 간단히 상황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재주는 마음 속으로 생각하기를 세탁기를 완전히 분해하게 되고 세탁기를 못 쓰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면 어찌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쳐다 보았습니다. 날씨가 무더워서 재주는 화장실에 선풍기를 설치해 드렸습니다. 아저씨가 재주를 쳐다보며 씨익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아저씨는 너무나 간단하게, 순식간에 나사를 풀으시고, 뚜껑을 열고 동전을 꺼내서 한 웅큼씩 재주에게 주었습니다. 아저씨의 커다란 손에 가득 쥐어진 동전을 받을 때마다 재주는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 왔습니다. 찌그러진 동전, 납작한 철판 쪼가리, 각종 오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기사 아저씨가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하하하! 왠 토큰이 이렇게 많지. 그렇구나, 세탁기가 오래돼서 거의 생활 역사 박물관 수준이구나. 최근의 호주머니 속 내용물이 빠짐없이 골고루 보관 되어있네."

 

 서비스 기사 아저씨는 세탁기의 동전을 다 꺼내시고, 세탁기에 물을 채워 시운전을 해보시고 아무 이상없이 작동이 잘 된다고 하셨습니다. 재주는 너무너무 기쁘고 아저씨가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고민하고 고생했는데 문제를 간단히 해결하시는 아저씨의 전문적인 능력에 놀라고 아저씨가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재주는 자기가 전기 드릴이 있었더라면 나사를 쉽게 뿁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드릴로 순간적인 힘이 가해져서 나사가 순간적으로 뿁혔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사 아저씨는 재주가 서비스 비용이 얼마냐고 물으니 어떤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무료라고 하시면서 걱정말고 잘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아저씨는 웃으시면서 나중에 회사에서 확인 전화가 오면 이쁘게 이야기 해주면 고맙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재주는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정말 기뻤습니다.

 

 월요일 날, 재주는 기쁜 마음으로 집에 있는 저금통을 모두 털어서 재민이와 자기의 통장을 가지고 은행에 갔습니다. 집에 있는 동전은 금액별로 종이에 싸고, 세탁기에서 나온 찌그러진 동전은 따로 금액별로 종이에 사서 은행에 가지고 갔습니다. 은행에서는 깨끗한 동전만 받고 찌그러진 동전은 받지 않았습니다.

 

"찌그러진 동전은 저희 은행에서 받지 않습니다. 한국 은행에 직접 가서 바꾸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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