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지키는 지키는 사람들
안미란
가상의 미래 사회를 펼치며 오늘의 문제를 일깨우는 작품으로 오늘의 어린이가 어른이 될 무렵, 실제 일어날 법한 일을 속속들이 그려내어 현대 문명이 마주치고 있는 문제를 가상의 미래 사회를 통해 흥미롭게 보여 줍니다.
미래 사회는 오늘을 훌쩍 건너뛴 아주 딴 세상일 수는 없습니다. 지식과 정보를 앞세우는 사회는 그것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뚜렷하게 달라집니다. 어린이의 아름다운 꿈은 곧 우리 사회의 아름다운 미래입니다. 이 작품은 미래의 주인이 될 어린이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아주 좋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외갓집 동네에는 우물이 있었다. 대나무가 빽빽하게 둘러선 우물터에는 언제나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졌고 여자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우물은 둥그런 돌무더기에 갇힌 게 아니라 샘솟고 흐르기도 했답니다. 할머니는 우물물은 땅 속에서 하나로 흐른다고 했다. 땀 밑으로 물이 지나다니는데 왜 땅이 젖거나 꺼지지 않을까. 물은 어디서 나와 어디로 흘러갈까. 난 모든 게 궁금했다.
진희는 집에서 컴퓨터를 이용하는 수업도 좋지만 출석 수업이 더 재미있었다.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좋고 직접 활동하는 수업이 더 신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침 일찍 마을 길을 달리는 기분은 정말 상쾌하다. 진희는 식물이 씨앗으로 번식을 하고 꽃이 피어야 씨앗이 생긴다는 내용은 학교에서 배웠지만, 싹이 나서 자라는 걸 직접 본 적이 별로 없다. 어디를 가도 꽃은 흔하지만 그 꽃이 씨를 맺고 다시 뿌려지는 한 살이를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식물은 자라서 죽기 전에 다음 세대를 위한 씨앗을 남긴다. 그것은 씨앗이 가진 고유한 성질이다. 하지만 첫 세대에만 제대로 자라고 그 다음 세대를 키우기 위한 씨앗을 맺을 수 없게 하는 유전자를 주입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이런 유전자를 주입하는 게 터미네이터 기술이다. 터미네이터는 없애 버리는 사람, 해결사 혹은 제거자란 뜻이다.
옛말에 '농부는 굶어도 이듬해 뿌릴 씨앗을 베고 잔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씨앗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좋은 씨앗이 없으면 농사를 계속할 수 없으니까요. 씨앗을 갈무리하는 것이이야 말로 농부들이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었지요. 현대 과학이 발달해서 농작물 품종이 개량되었는데 우수한 품종을 개발한 과학자의 노력이나 연구한 데 들인 지식의 힘을 재산이자 권리로 인정해 주어 그 품종의 주인이 되게 하였다. 그리하여 모두의 씨앗, 모두 함께 나눌 수 있던 앎이 이제는 한 사람이나 한 회사의 것이 되었다.
씨앗을 잃는 건 우리 앞날을 잃는 것이다. 아버지는 우리의 미래를 지키려고 하시는 것이다. 쑥갓뿐 아니라 모든 씨앗은 원래부터 농부의 것, 아니 그걸 키우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생명체는 그 누구의 소유도 될 수가 없다.
진희 어머니는 성큼성큼 밭으로 걸어가더니 맨손으로 땅을 헤치기 시작했다. 진희 어머니의 두 손에는 싹이 있었다. 떡 잎 두 장 사이로 본 잎이 나오는 어린 싹이다. 누군가 땅을 갈아엎긴 했지만 씨앗까지 하나하나 파내진 않았다. 땅은 버려진 씨앗을 보듬어서 키웠다, 따스한 엄마춤처럼.
"나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친구가 되련다. 생명은 그것이 다른 것보다 더 뛰어나서 존중받는 게 아니다. 그 자체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것이다. 건강한 먹을거리를 키우는 진짜 농부는 지구 사람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값진 일을 하는 사람이다. 씨앗은 살아 남을 자유와 앞날의 꿈을 품고 있다."
거북산에 도착하니 봄을 훨씬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얼었던 땅이 풀려 나른한 기운이 올라왔다. 햇빛도 따사로웠다. 흐르는 물소리가 요란했다. 사람들 마음자리에 희망이라는 씨앗이 싹트고 있다.
출처: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창비 아동문고192)
'꿈꾸는 동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제아 / 박기범 (0) | 2009.11.15 |
---|---|
1318 미술여행 / 김종수 (0) | 2009.11.13 |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 유시민 (0) | 2009.11.01 |
괴상한 녀석 / 남찬숙 (0) | 2008.12.28 |
우리나라의 건국신화 /김용만 (0) | 2008.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