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
최 윤 정
독서는 한 권의 책과의 만남, 그것도 살아 있는 만남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책은 여러 번 읽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여러 번 만날 때처럼 늘 새롭다.
책과 가깝게 해주는 것만이 우리 같은 부모가 아이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유일하고도 최선인 재산이라고 판단한 나는 첫아이가 그림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책 방에 갈 때마다 심심찮게 어린이 책 코너에 들렀다. 그러나 딱히 눈에 들어오는 책도 없고 아이들을 좋은 독서라고 생각되어지는 방향으로 이끌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열 일 제치고 책에 매달리자 오히려 아이는 엄마가 무슨 책이기에 저렇게 재미있게 읽을까 하고 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엄마들은 아이에게 강요하지 말고 엄마들이 먼저 책을 읽기를 권한다.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책들이 다 좋은 책은 아니다. 그러나 정말 좋은 책은 반드시 아이들이 좋아 한다. 따라서 아이들 곁에 좋은 책만 가려 놓아 준다면 아이들은 분명히 책을 읽는다. 문제는 좋은 책을 가려내는 수고를 감당하는 일이다.
모든 문학 작품은 당연히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좋은 작품일수록 사색의 깊이를 더해 준다. 사색이 깊어질수록 언어는 시적인 형태를 띤다. 시 한 줄이 감행하는 생략법, 시 한 줄이 지닌 깊이 그리고 거기서 떠도는 하나의 형태로 규정되지 않은 무수한 언어들이 웅얼거림을 읽어야 한다. 따라서 이 문장들을 이해하려면 곡선적인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시간은 직선적이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다. 아이들은 어서어서 자라고 싶어 하고, 어른들은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는 티 하나 없이 맑은 동심을 그리워 한다. 아이들에겐 지금 살아내야 할 현실만 있을 뿐이다. 아이들은 아프면 울고 좋으면 웃는다.
동화가 교과서와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면 그것은 동화가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움직여진 마음이 생각을 거듭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고가 생겨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더듬거리는 생각을 헤아려서 이해하고 아이들이 생각한 그대로 말할 줄 알도록 이끌어야 한다. 아이들이 세상을 달리 보고,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책들이 많이많이 쌓이기를 바란다.
어른들의 과거는 아이들의 현재와 같지 않다. 동화 속에 나오는 수 많은 아이들을 통해서 나는 아이들 마음을 읽는 연습을 했고, 아이들의 현실을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여기 지금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을 밀착 렌즈로 들여다본 동화,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가르치는 동화, 믿음직스럽고 힘있는 손으로 아이들의 등뒤를 밀어주고 어깨를 토닥거려 주며 인생이라는 길 위를 함께 걸어가는 뚝심 있는 작가의 출현이 절실하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다는 것이 아이들처럼 뜻없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세상과 사물의 이치에 대해 훨씬 열려 있다. 무한한 가능태로 존재하는 아이들의 머릿속에, 가슴속에 생각의 빛을 비추어 주는 환한 작품 한 편이 그립다.
자식들과 함께 어린이 책을 읽는 부모들이 점점 많아지기를, 그래서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하나둘 늘어나기를, 그리하여 어느 날엔가는 부모들이 일일이 간섭하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책을 골라 읽어도 괜찮은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출처: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 / 최 윤 정 /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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