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가랑비01 2011. 7. 3. 20:23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수인(囚人)들은 늘 벽을 만납니다. 가련한 자유의 시간인 꿈 속에서마저 벽을 만납니다. 무수한 벽과 벽 사이, 운신(運身)도 어려운 각진 공간에서 우리는 부단히 사고(思考)의 벽을 헐고자 합니다.  생각의 지붕을 벗고자 합니다...

 

   벽의 기능은 우선 그 속의 것을 한정하는데 있습니다. 시야를 한정하고 수족을 한정하고 사고를 한정합니다.  한정한다는 것은 작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넓이는 좁아지고 길이는 짧아져서 공간이든 시간이든 사람이든 결국 한 개의 점으로 수렴케 하여 지극히 단편적이고 충동적이고 비논리적인 편향을 띄게 됩니다. 우리는 벽으로 망가진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서 감정의 억압만을 해서는 안됩니다. 감정에 기초하고 감정에 의존하여 발전하는 이성을 계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사건에 매몰되거나 각자의 감정에 칩거해 들어가는 대신 우리들의 풍부한 이웃에 충실해야  정신적 자유인 이성을 얻고 벽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해 지리라 생각됩니다....  

 

 어둠은 새로운 소리를 깨닫게 할 뿐만이 아니라 놀랍게도 나 자신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특히 겨울밤의 사색은 손시린 겨울 빨래처럼 마음 내키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이는 자기와의 대면(對面)의 시간이며 자기 해방의 소중히 다스려야 할 시간입니다. 기상 시간전에 옆 사람 깨우지 않도록 조용히 몸을 뽑아 벽 기대어 앉으면 써늘한 벽의 냉기가 나를 깨우기 시작합니다. 나에게는 이 때가 하루의 가장 맑은 시간입니다. 겪은 일, 읽은 글, 만난 인정, 들은 사정.... 밤의 긴 터널 속에서 여과된 어제의 역사들이 내 생각의 서가(書架)에 가지런히 정돈되는 시간입니다....

 

  싸움에서 가장 상책은 처음부터 싸움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싸움에서 이기는 상책은 싸움에서 잘 지는 것입니다. 지면서 이기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경우에 어긋나지 않고 떳떳해야 합니다. 자기 주장을 확실히 전하는 방법 중에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깨닫도록 은밀히 도와주고 끈기있게 기다려 주는 유연함과 후덕함을 갖추는 일입니다....

 

 아무리 담장을 높이더라도 사람은 결국 서로가 서로의 일부가 되어 함께 햇빛을 나누며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 합니다. 천재란 그것이 어느 개인의 독창이 아니라 오랜 중지(衆智)의 집성이며 협동의 결정(結晶)입니다. 이름 없는 풀들이 모이고 모여 밭을 이루고 밟힌 잡초들이 서로 몸 비비며 살아가는 그 조용한 아우성 소리를 저는 듣습니다. 저는 이 무성한 잡초 속에 한 포기 키 작은 풀로 서서 몸 기대며 어깨를 짜며 꾸준히 박토(薄土)를 배우고 나의 언어를 열고 나의 방황을 끝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과거를 파헤치지 않고 어찌 그 완고한 정지(停止)를 일으킬 수 있으며 과거를 일으켜 걸리지 않고 어찌 그 중압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않고서 어찌 새로운 곳으로 나아갈 수 있으랴.  한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가 몸소 겪은 자기 인생의 결론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사상을 책에다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이끌어 내는 사람에게 있어서 아무리 조잡하고 단조롭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사상은 그 사람의 삶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사상이란 그것의 내용이 우리 생활 속에서 실천됨으로써 비로서 완성됩니다...

 

 먹이를 물어 나르는 어미새는 쥐덫에 갇혔다가 놓여나는 혼찌검을 당하고도 쥐덫에 놓인 새끼를 위해 조금도 변함없이 먹이를 나릅니다. 새끼가 무엇인지, 어미가 무엇인지, 생명이 무엇인지.... 참새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우리 어머니를 생각 했습니다 정릉 골짜기에서 식음을 전폐하시고 공들이시던 어머니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20년이 지나 이제는 빛바래도 좋은 기억이 찡하고 가슴에 사무쳐 옵니다.

 

 이제 입춘도 지나고 머지 않아 강물이 풀리고 따사로운 춘풍에 이른 꽃들이 필 무렵, 겨우내 우리의 몸 속에 심어 둔 이웃들의 체온이 송이송이 빛나는 꽃들로 피어날는지....인정은 꽃들의 웃음 소리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 햇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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