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편지
황대권
창문을 열면 반 잘린 앞산이 눈앞에 다가오는데 요즘 짙은 아카시아 향기 때문에 속이 다 울렁거린다. 눈을 들어 산을 바라보면 세 가지 초록빛이 마치 경쟁이나 하듯 내 눈을 즐겁게 해 주고 있다. 우중충한 녹색의 소나무와 5월의 수분을 담뿍 빨아들이고 있는 신록의 참나무, 그리고 위세를 부리듯 온 산에 출렁이는 아카시아 흰 빛 초록, 햇빛에 농익어 모두 같은 색깔의 초록이 되기 전에 실컷 봐 두어야겠다...
세상 만물이 다그렇겠지만 식물이 자라고 영그는 데는 다 때가 있다는 것이지. 공부 못하는 아이들더러 공부해라 뭐해라 하고 부모가 야단을 친들, 때가 아니 되면 아무 소용이 없어. 아이가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서 언젠가 자신의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힘을 기다려 인내하고 있어야지.....
그림을 그리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한 번으로 대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상을 아무리 수십 번 들여다보아도 직접 그려보지 않고는 제대로 파악한 것이 아니다. 또한 세밀한 처리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리다 보면 전체적인 조화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세밀은 전체와의 관련 속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전체와의 연관 속에 어떤 일을 추진하여 실천을 하되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리다가 잘 안 되면 좀 쉬는 게 최선이지. 쉬긴 쉬지만 머릿속으로 그 그림을 계속 그리고 다른 일에 몰두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때에는 잠시나마 그림그린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다른 일에 몰두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그 그림이 그려지고 싶어 무심코 붓을 잡는다. 그림이 놀랄 정도로 잘 된다. 전에 몰랐던 기술이 저절로 구사되고 아무리 애써도 만들어지지 않았던 색깔이 만들어 지기도 한다. 무위에 의한 학습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산야에 자라나는 풀꽃들의 이름은 참으로 예쁘고 친근한 것들이 많다. 그 많은 풀들이 일일이 그런 예쁜 이름을 붙여 준 우리 민중들의 슬기에 감사드리고 싶다. 요즘 보면 우리 산, 강, 마을 이름을 조사하여 그 어원과 뜻을 조사한 책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산야의 풀 이름은 입에서 입으로 떠돌다가 창작된 이름이 많아서 그 유래를 찾기 힘들어 그 어원을 잘 모르는 것들이 많아 안타깝다. 오늘 하루 아무도 보아 주지 않는 저 작은 꽃을 피워 내기 위하여 화단 한 구석의 내밀한 공간 속에서 의젓하게 자리하기 위하여 쉼없이 움직이고 있는 주름잎의 내면을 그려 본다....
야생초편지 / 황대권 / 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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