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샘

고향가는 길 / 최종대

가랑비01 2011. 8. 15. 12:27

고향가는 길

 

 내가 지금 세속 나이 칠십이라 합니다. 어느덧 시작과 끝이 하나로 보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한 평생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합니다. 좋은 일, 궂은 일, 끝도 없는 굽이 굽이를 살아왔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미지의 어떤 세계를 향한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나이를 먹었어도 늘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감출 것도 없습니다.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무언가를 얻으려고 긴 시간을 허둥대고 여러 곳을 해맺습니다. 다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외길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삶이라 해서 내 맘대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참으로 노력해야 할 것은 하늘이 시키는 일을 어떻게 잘 찾아낼 것인가 하는 그것일 성싶습니다.

 

  오늘 나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름모를 꽃들을 보고 싶고 높은 산 광활한 벌판을 보고 싶고 끝없이 흐르는 큰 강물을 보고 싶고 망망한 큰 바다와 출렁이는 파도를 보고 싶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보고 싶은 한 시골 소년의 그리움이라고 할까. 아무튼 나는 지금 당장 손을 움직여 허공에다 어린시절 새벽에 보았던 소복히 쌓인 눈같은 그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근원에 가까이 간다는 것은 사랑의 파장 깊은 곳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온갖 경계가 녹아 흔적조차 없습니다. 너와 나의 분별심이 일어나기 이전의 무지의 세계가 그립습니다. 하늘을 우러르며 절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온갖 만물을 향하여 절하고 그리하여 본래의 자리, 그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나홀로 세상과 하나되어 순진무구한 어린 마음으로 보이는 대로 보고 있는 대로 보고 나의 자유를 구속하는 욕심에서 벗어나 큰 자유를 얻고 '세상은 참 아름다워라!' 그런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천재란 주어진 대로 살 수 있는 사람같습니다. 천명을 받고 그 일을 수행하는 것 말입니다. 주어진 대로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 주어진 것만 철저하게 다 쓰는 인생, 그것은 내가 발견하는 것인지 절로 그렇게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고향가는 길 / 최종대 / 햇빛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