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 역사박물관
서대문형무소 역사박물관을 초등아이와 견학했습니다.여름방학부터 가보고 싶다는 것을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어왔습니다.
오늘 아침에 꼭 가보고 싶다고 하여 아이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가 볼 만한 곳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즐거운 구경거리도 없고 어둡고 슬픔이 배어 있는 그런 침침한 감옥에 가보려고 하느냐. 그리고 일본이 부자여서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었다는 말이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니?"
저의 불성실한 물음에 초딩 아이는 정색을 하며 단호하며 진지하게 답하였습니다.
"궁금하잖아요. 나라를 지키기 위한 독립투사들이 어떤 환경에 있었는지 궁금하잖아요. 역사라는 것이 화려한 것만 역사가 아니고 고통받고 어두운 것도 역사잖아요. 현장에 직접 가서 느껴야 하잖아요. 즐겁고 위대한 것만 보려고 하는 것은 역사가 아니잖아요. 고통받고 시련을 이겨낸 것도 역사잖아요. 그리고 부자들은 욕심이 많아서 거져 주지 않아요. 일본이 하나를 주었으면 열을 가져가기 위한 거여요."
서대문형무소의 시작은 1908년 전국 의병들이 모여 서울진공작전으로 동대문까지 수십여 차례의 혈전을 치루면서 진출하였던 사실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13도 창의군 총의병대장 이인영 장군의 부친이 돌아가시자 장례식문제로 의병대장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장비와 식량부족과 탈진으로 서울진공작전이 실패로 끝나면서 이인영, 이강년, 허위, 이은찬 등 의병장을 비롯하여 수 많은 의병들이 일본군에 잡혀서 수감된 곳이 서대문 형무소라고 합니다.
서대문형무소는 수많은 애국선열이 고통받고 순국한 참혹한 역사의 현장입니다. 1945년 해방이 선언되는 그 시간에 마지막으로 일제에 의해 가장 많은 선열이 살해당하는 비극이 있었으며 그들은 만행을 숨기기 위해 형무소를 불태웠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수감된 애국지사는 수 만인데 지금 남아 있는 기록은 5천여건 밖에 없다고 합니다. 투옥된 애국지사들 사진에는 앳된 10대 들도 다수 있어서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습니다.
1989년 독립공원이 조성될때까지 그 참혹한 일제만행의 현장이 독립된 조국의 감옥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놀랍고 그 곳에 기록된 김근태, 한승헌, 문동환 등의 기록판을 보고 묘한 감상에 젓었습니다.
방문객의 대부분은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었으며 아프리카에서 온 일단의 외국인도 있었습니다. 궁궐에서처럼 중국인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학생복 입은 일본학생과 일단의 일본인들을 목격했는데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왔으며 무슨 생각을 하며 갈 지 궁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