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2005년4월
이비인후과에 갔다.
감기가 몇 개월 동안 안 걸리더니 이번에 콧물감기가 걸렸다. 심하지는 않지만 콧물이 며칠에 한 번씩 계속 나왔다. 다른 감기 증세는 없고 콧물만 흐르고 잠잘 때 코가 약간씩 막히어 쌕쌕거리며 잠을 잤다.
몇 번 소아과에 가서 처방을 받고 약을 지어먹는 동안 약간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를 반복하며 콧물이 흐른 지 보름이 다 되어 갔다. 환절기로 기온 차가 큰 것도 있지만 유치원에 다니면서 감기를 아이들끼리 서로 감기를 주고받아서 안 낫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멀리 전철역에 형아 때부터 우리 가족이 단골로 가는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간호사 이모들이 오랜만에 왔고 많이 컸다고 하면서 반가워했다. 아빠는 인사를 잘 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왠지 쑥스러워 짐짓 인사를 안 했다.
의사 선생님이 코에 약간의 염증이 있으니 콧물을 약간 뺀다고 안심시키고는 항상 그렇듯이 눈을 감고 있는데 기다란 뭔가를 콧속에 쑥 넣으셨다. 나는 약간 움찔거렸지만 잘 참았다. 의사선생님이 잘 했다고 하시면서 사탕을 하나 주셨다.
아빠와 자전거를 타고 동네에 와서 동네약국에 들려 코 염증 치료 감기약을 물약으로 받아서 어린이나라로 왔다.
어린이나라 앞 도로는 4.19행사로 경찰 아저씨들이 길가로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잠시 후에 유명대학교 학생들이 깃발을 무수히 날리며 구호를 외치고 북을 치고 꽹과리를 치면서 시커멓게 몰려오고 있었다.
엄마는 멀리 행렬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를 데리고 들어가 나에게 감기약을 한 숟갈 먹이셨다. 감기약은 아주 달았다.아빠는 이 자리에서만 같은 행진을 열 두 번이나 보았으면서도 신이 나서 연방 무어라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엄마와 나에게 빨리 나와서 구경하라고 소리쳤다.
도로가에 나와서 우리 가족은 행렬을 함께 구경했다.엄마와 아빠는 예전에는 남자들이 선두에 서서 행사를 진행하며 마이크를 잡았는데 요즈음에는 전부 여자들이 선두에 서고 마이크를 잡는다고 떠들고 계셨다.엄마와 아빠가 저만 할 때에는 저렇게 행진은 꿈에도 생각 못 했고 기습적으로 모였다가 도망가기 바빴으며 그 당시 데모는 학교도서관에서 웅성거려 내다보면 경찰이 이미 벌써 학교에 출동해서 들어와 있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갈수록 대학생들이 어려 보이니 엄마와 아빠도 늙어 졌다는 증거라고 말씀하면서 들떠 있었다.
나는 행진해 오는 비슷한 행렬을 어제도 보아서 그냥 그랬다. 사실 그 때 나에게는 행렬도 부모님의 말씀도 눈과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방금 전에 한 숟갈 먹었던, 혀끝에 남아있는 약의 달콤함에 깊이 빠져 있었다.
나는 부모님의 손을 살며시 뿌리치고 어린이나라로 살짝 들어와서 엄마가 가방에 넣어 둔 약을 먹었다. 바로 뒤따라 온 아버지가 문을 열고 빨리 나와서 구경하라고 불렸다. 나는 등을 돌리고 약을 먹다가 밖으로 나왔다.
엄마가 나를 보더니 입에 약간 묻은 물기를 보시고 너 혹시 약 먹지 않았니 하면서 허겁지겁 들어와서 가방을 열어보고 난리가 났다. 이틀간 나누어 먹어야 할 약을 한꺼번에 다 먹은 것이였다.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이비인후과에 전화했다. 아빠는 멍하니 서 있더니 그래도 일단 응급처리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나를 화장실로 데리고 들어가 손가락을 목에 넣고 토하게 했다.나도 내가 약을 잘 못 먹어서 문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반항하지 않고 토하려고 노력했다. 약물은 이미 내려갔는지 전부 나오지는 않고 끈끈한 침과 함께 약이 섞여서 어느 정도의 약이 토해져 나왔다.
그 때 엄마가 와서 의사 선생님 말씀이 나이가 있어서 크게 문제는 되지 않을 것 같고 내가 나이가 조금만 어렸더라면 큰 일 날 뻔했다고 하신다. 억지로 토하게 하지는 말고 원래는 모레 오라고 했는데 내일 와 보라고 했다. 그래도 아빠는 안심이 안 되었는지 손가락을 다시 넣으려고 하자 나는 안심하고 이를 악물고 거부했다.
나는 약을 엄청 좋아한다. 형아가 약을 먹을 때마다 나는 항상 부러워하며 나에게도 약을 달라고 한다. 얼마 전에도 형아에게 한약을 달여 먹이는 것을 보고 엄마에게 부탁해서 기어이 얻어 먹었다. 또 나에게 맞지 않은 한약을 형아가 먹고 있을 때는 기어이 엄마를 졸라서 내 약도 사 달라고 해서 한약을 지어먹었다.
나는 약 먹는 것을 엄청 좋아한다. 하지만 이번엔 나도 많이 놀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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